아무튼 서론은 시민들에게 잘못된 이미지를 심어주는 광고와 투쟁을 선언하며 창간한 잡지 <애드버스터(Adbusters)>지가 자신의 상표가 붙은 '체제 전복적 러닝 슈즈 브랜드'인 블랙 스팟 스니커를 팔기 시작했다는 얘기로 시작한다.
크크크 체제 전복적 러닝 슈즈라니....
거참 재미있는 인간들도 있네~라며 저자들의 글을 따라가다 보니 들려오는 메시지는 이렇다.
길어서 접어요~
저자들이 (자본주의 주류문화라고 생각 되는 것들에 대한)반문화 현상에 특별히 우려를 표하는 것은 반문화의 거짓신화(저자들에게는 반문화는 이미 주류의 일부분이다)가 사회, 정치 생활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줄 만큼 그 뿌리가 깊은 탓에 엄청난 정치적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완전한 전복이 아닌한 모든 것이 '피상적'일 뿐이라는 반문화의 의식은 실질적인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개혁을 "포섭" 혹은 "배신"으로 일축해 버리고 빈곤, 생활수준, 의료보험, 여성 문제 등 제도의 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까지도 부정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좌파 진영의 민주정치에 대한 경멸감 고취, 구체적인 정치 행동에 대한 좌절감, 규범과 제도의 공백, 범죄의 낭만화, 정신질환에 대한 부당한 미화를 가져왔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따라서 저자들은 무분별하거나 낡은 관습에 반기를 드는 저항 행위와 합법적인 사회 규범을 위반하는 행위를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문화와는 별도로 정치가 들어설 공간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어지럽게 흩어진 '과감히 차별화되기'라는 거짓신화 보다는 합리적인 동일화를 주장하는 저자들의 생각은 일견하기에도 상당한 타당성이 있어보인다. 특히나 말로만 외치는 구호가 아니라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에 대한 지지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그러나 한번에 쓰기에는 좀 과한 내용이였는지 군데군데에서 삑사리가 나버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예를 들자면 마이클 무어의 [볼링 투 콜럼바인]에 대한 해석부분이 있겠다. 사실 같은 영화를 보고 이리도 다를 수 있나 깜짝 놀란 부분인데, 저자들은 무어가 총기규제에 '반대'했다고 믿는다(이런!) 물론 무어가 미국인 정서 깊숙한 곳의 공포에 집중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행동을 간과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만약 그가 총기규제에 반대했다면 콜롬바인의 희생자와 함께 K마트에서 탄약판매에 항의하고 대표적인 총기 애호가인 찰튼 헤스턴에게 끈질기게 인터뷰를 요구하며 그의 집 앞에 총기로 희생된 6살 어린이의 사진을 놓고오는 엔딩의 의미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결국, 저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영화를 감상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현대의 여행자가 여행을 지위 재화로 만들고, 애초에 이국적인 장소를 찾아 나서게 했던 바로 그 반물질주의적 태도로 인해 점점 더 많은 지역들을 세계경제로 끌어들인다고 해서 유일한 '진짜 여행'은 사업상의 여행일지도 모른다고 상상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사업상의 여행이 원칙적으로 관음적일 필요가 없는 거래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상상하듯이 '원칙적'으로 착취적이지 않다고 보는 것은 너무나도 순진한 생각이기 때문이다(결국 그들도 선진국의 대학교수들이다)
요 몇일을 이 책과 함께 했다. 흥미로운 것에는 사실이지만 아직 반문화 체험이 깊지 않은 어중간한 국가에 태어난 이유로 조금은 다른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것도 사실이다.
캐나다와 한국이 다른 나라이듯이 저자인 조지프 히스, 앤드류 포터와 나는 다르다.
반문화가 이미 주류가 되어버린 사회에서 나온 글을 이제와서 반문화를 수입하고 있는 나라에서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억지'가 있기 때문에 그 간극을 메우는 일은 '우리(독자)'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아 버렸다. O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