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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ubert : Sonata For Arpeggione And Piano, D821 
Cello: Mstislav Rostropovich
Piano: Benjamin Britten
DECCA(1962)


평생 연애 한번 못 해보고 어린 나이에 죽는 것 만큼이나 억울한 일이 또 있을까.
자, 여기 그런 사람 하나 있다.

바로 슈베르트다.


오늘 소개할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는 자기 동네에서만 불쌍하게 살다가 서른살 갓 넘기고 세상을 등져버린 그의 이름 만큼이나 참으로 안쓰러운 음악이 아닐 수 없다.
지금에 와서야 슈베르트 하면 가곡의 왕이니, 서정적 멜로디의 낭만파 대표작곡가 등의 화려한 수식이 따라 붙지만 
사실 평생을 병마와 가난에 허덕여야 했던 슈베르트는 인생 자체가 전쟁이었다.
오죽했으면 만든 음악들이 죄다 '죽음과 소녀','겨울나그네', '시든 꽃' 이런 거다.( 심지어는 교향곡 이름도 '비극'이다.ㅡ.ㅡ) 
바흐나 모차르트와 같은 선배 음악가들이 왕이나 귀족들의 후원을 받으며 남부럽지 않게 생활하던 것과는 다르게
슈베르트는 전업 작곡가였기 때문에 사실 돈 들어올 구멍이 없었다고 봐야 옳다.
좋게 말하면 프리랜서고 대놓고 말하면 은둔형 외톨이다.


(느껴지는가? 이 히끼고모리의 포스가!)


슈베르트가 그 당시 얼마나 심각한 고민을 안고 살았는지는 내가 자세히 알 도리는 없겠지만 
이 소나타를 만들고 나서 적은 일기장을 보면 도무지 제정신으로 산 사람은 아닌 듯 싶다.


"나는 밤마다 잠자리에 들 때 다시는 눈이 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아침이 되면 오직 어제의 슬픈 생각만이 다시 나를 찾아옵니다.
이처럼 즐거움이나 따뜻함도 없이 하루하루가 지나갑니다."


한마디로 죽고 싶다는 얘기다. 
이게 어디 20대 젊은 청년의 일기장이란 말인가!

만약 당신이 우울할 때 위로해 줄 음악을 찾는다면 우울의 밑바닥까지 맛 본 슈베르트만이 자격이 있다.


이 앨범에서는 얼마전 안타깝게 타계한 로스트로포비치 옹께서 유려한 첼로연주를 들려주고 계시는데,
사실 아르페지오네라는 악기가 비록 우리가 편안하게 듣고 있기는 하지만 첼로로 연주하기가 여간 까다로운게 아니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바로 이 지랄맞은 악기가 첼로보다 음역이 높아서 편안하게 1st 포지션으로 연주하면 될 음들을 죄다 하이포지션으로 바꿔버려 특히나 빠른 패시지라도 나올라 치면 연주자를 땀 삐질나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연주자 입장에서는 밑져야 본전인 셈, 남는게 없는 장사다.
하지만 세기의 거장 로스트로포비치씨에게는 씨알도 안 먹히는 말이고,
반주를 맡은 브리튼아저씨의 피아노도 그야말로 명불허전이다.
전혀 튀지 않으면서도 자신감 넘치게 그어 대는 활을 포근하게 감싸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1악장이 유명하지만 나는 2악장 'adagio'야말로 백미라고 생각한다.


비록 슈베르트가 온갖 세상의 고뇌를 다 떠안고 살다 갔지만
슬픔으로 만들어진 노래야 말로 세상을 행복하게 할 거라는 그의 말처럼
죽은 이의 말없는 위로가 더없이 아늑한 밤이다.

(출처: 김성일님의 블로그에 있는 글을 임승빈님이 스크랩한 것을 다시 펌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