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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5도살장

imuky 2010. 11. 15. 14:07
제5도살장 - 10점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아이필드

어찌어찌 하다보니 레이 브래드버리와 커트 보네거트를 넘나들고 있는 요즘의 독서생활입니다.
사실 중간에 딴 사람 책도 읽었지만 아무래도 근자에 들어서 가장 인상적인 작가들인가 봅니다. 레이 선생과 커트 선생은.

풍자작가이자 에세이스트 커트 보네거트의 제5도살장은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구성된 소설입니다.
문제는 그 개인적인 경험이라는 것이 너무나 특별한 드레스덴 대공습이라는 거죠.
드레스덴은 독일의 한 도시로 2차 세계대전 말기 연합군의 공습으로 초토화된 도시입니다.
전쟁 중에 폭격으로 파괴되지 않은 도시가 어디있겠냐라시면 좀 섭섭한 것이. 드레스덴은 그 폭격의 정도가 인류 역사상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철저했으며, 그 폭격으로 사망한 사람의 수가 13만명이 넘는 대규모 민간인 학살이였기 때문입니다.

종전 후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군사적인 가치도 그리 높지 않은 과시용 폭격이였다는 점이 더 놀라운 대규모 살인의 현장에서  살아 돌아온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은 그 경험의 충격만큼이나 풀어 내놓기 어려운 이야기 였을 것 같습니다.
실재로도 매우 어렵게 완성했다고 하더군요.

내용은 작가와 작가의 주인공 빌리 필그림, 그리고 트랄파마도어 행성을 넘나들며 현재와 과거, 환상을 관통하는 정신분열성 소설입니다. 소설의 주인공 빌리 필그림이 좋아하는 작중의 SF소설가 킬고어 트라우트는 커트 보네거트 자신이기도 하고, 아니기도하며 주인공 빌리가 시공간을 넘나들며 경험하는 모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사의 소스를 제공한 사람이자 실패한 작가죠. 시간을 여행하여 모든 순간에 모든 것을 체험하는 빌리의 능력은 어쩌면 킬고어 트라우트의 소설을 읽고 만들어낸 환상들일지도 모릅니다. 그래 보이기도 해요.
그러나 빌리의 능력이 환상이든 실재 능력이든 과거와 현재를 함께 사는 빌리의 능력 덕분에 사상 최악의 대학살의 현장이 보다 냉소적으로 그려지기는 합니다. 그렇게 가는거죠.

극중 빌리의 직업이 검안사인 것도 의미가 있으려나요?
똑 바로 바라보기에는 너무나 끔찍한 경험이 커트 보네거트에게 자신의 소설의 주인공을 검안사로 만든 계기가 되었을 것 같기는 합니다.

내가 바꾸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정심과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와
늘 그들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저도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