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스페인의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Rodrguez de Silva Velzquez)의 라스 메니나스(시녀들)을 처음 접하게 된것은 박민규의 장편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책 표지였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그러하리라 믿습니다(여러분들을 저와 동급으로 취급한 점은 사과드립니다).

책표지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추녀인 시녀. 어쩌면 외소발육증 환자일지도 모르는 그녀의 못 생긴 얼굴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지요. 소설의 화자가 이상하리만치 궁정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얼굴이라고 느꼈던 그녀의 얼굴은 소설 속의 여주인공 얼굴이기도 했습니다. 화려한 물신의 궁전 '백화점'에서는 이상하리만치 어울리지 않았던 바로 그녀 말입니다. 

 그런데 우연찮게 같은 그림의 똑 같은 영역에 주목했던 또 다른 작가가 있었기에 이 그림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 작가의 이름은 라헐 판 코에이.

저와 동갑인 이 네덜란드 출신의 작가의 책 제목은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입니다.

17세기 스페인 궁정을 배경으로 꼽추 난쟁이 바르톨로메의 생을 담은 이 작품은 박민규의 주인공이 주목한 추녀의 앞에 자리잡고 앉아 있는 개에게서 영감을 얻은 소설입니다.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어려서부터 놀림과 괄시를 받으며 살아온 바르톨로메가 우연찮게 마르가리타 공주(맞습니다. 그림 속의 그 공주님입니다) 눈에 띄어 공주의 놀이감인 인간개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그림 속의 개는 사실은 개가 아니라 사람인 것이죠. 그것도 꼽추에 난쟁이 장애아동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놀랍고 혐오스러운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놀랍기는 해도 궁극적으로 혐오스럽지도 황당하지도 않은 이야기로 끝을 맺을 수 있는 것은 소설 속의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 덕분입니다.

그는 바르톨로메가 개가 아닌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르톨로메의 내면은 개와 같은 상태이며 타인의 시각. 즉 공주의 눈에도 그는 개로 보인다는 현실을 더 잘 알고 있습니다.

바르톨로메가 아무리 "나는 개가 아니예요"라고 주장하더라도 남들이 그를 개로 보고, 그 자신이 그것을 받아 들이고 있다면 라는 이야기. 예술은 내면과 본질을 꽤뚫고 의도를 담아내는 것이라는 메시지가 그림 속 개의 정체에 대한 놀라운 상상과 함께 마무리 됩니다,

그림에 대해서 조금만 덧붙이자면 라스 메니나스의 왼편에 자리잡은 화가는 벨라스케스 자신으로써 그림의 대상인 펠리페 4세 부처의 관점에서 바라 본 한 순간을 그린 그림입니다(벽에 걸린 거울을 통해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림을 보고있는 우리의 자리가 바로 스페인 국왕 부부의 자리이며 관찰자의 시점은 국왕 부부의 시점과 동일합니다. 이렇게 그림의 대상이 주인공이 되는 시점, 그리고 그 모습을 그림 속의 인물들이 바라보고 있는 중첩된 시점이 이 그림의 묘미입니다. 마치 영화 속에서 뽑은 스틸처럼 일상의 한 순간에 중첩된 시점은 많은 후배화가들(피카소를 포함한)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림이 다른 그림의 모티브가 되고, 그림을 넘어서 소설의 원천이 되는 상황인 겁니다.
이쯤되니 라스 메니나스는 걸작인가보구나...라면서 고개를 주억거리게 됩니다.

예술은 또 다른 예술의 원천이 되는 군요. 그런데 전 언제 스페인에 가서 이 그림을 직접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요? 한번 꼭 직접 보고 싶은데 말입니다.

상당히 큰 그림이라고 하던데...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 6점
라헐 판 코에이 지음, 박종대 옮김/사계절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