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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담, UFO는 어디서 오는가 - 8점
이영수(듀나) 외 지음/사이언티카

<얼터너티브 드림>, <앱솔루트 바디>, <죽은 자들에게 고하라>에 이은 웹진 「크로스로드」의 네번째 SF 컬렉션입니다.
「크로스로드」는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에서 발행하는 과학저널 웹진입니다.
그리고 국내에서 유일하게 단발성 기획이 아닌 꾸준하게 이어지는 단편집을 내는 곳이지요.
아마도 정부의 과학기술진흥기금 및 복권기금 지원을 받는다는 것이 그 저력의 근원 아닐까 합니다.
안정적(?)인 재원이 존재한다는 것은 언제나 척박하기만 한 우리나라의 장르문학 환경에서 축복 받은 일이지요. ㅎㅎ

아무튼 이번에 출간 된 <목격담, UFO는 어디서 오는가>에는 총 10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우주와 그녀와 나 (김린)
외계와 외계인의 존재가 일상화되어 있는 미래. 지구 토박이 대학생인 ‘나’는 짝사랑하는 메텔 누나의 권유로 외계교환학생을 신청하면서 갖가지 이상한 일들을 겪게 되고, 급기야는 자신이 외계요원들에 의해 감시당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감시의 이유는 주인공의 '나'의 K지수가 높아서, 지구 멸망의 시기를 늦추는 행성단위 대속진의 구성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대속진(代贖陣)이라니.... 외계문명을 영적이 차원의 무엇인가로 탈바꿈시켜 버렸군요.
아쉬운 점은 '외계학과 4공주'의 별명이 세리, 밍키, 핑크, 메텔이라니. 작가의 나이를 살짝 엿볼수 있는 작명 센스였습니다.

시공간-항(港) (백상준)
외계인의 침략으로 인류가 멸망 위기에 처하자, 연합군은 영철 일행을 타임머신에 태워 10년 전으로 보내 과거의 인류가 외계인의 침략에 대비할 수 있게 하고자 하는데요. 그러나 영철 일행이 도착한 곳은 과거가 아니라 ‘시공간-항’이였으며 그곳의 타임패트롤 같은 존재는 과거를 바꾸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는군요.
수 많은 우주를 위해 이렇게 하나의 우주는 멸망하고 맙니다. 물론 인류가 멸망한 것이지 우주가 사라진건 아닙니다. 

수련의 아이들 (듀나)
초광속통신이 가능한 인공생명체가 환경미화원 아줌마의 몸을 숙주로 삼아 새로운 우주와 역사를 향해 나아간답니다. 생물공학자들의 실수와 외계인의 개입이 빚어낸 환경미화원 아줌마의 그로테스크하고 숭고한 변신기가 슬쩍 아름답고 숭고하게 느껴지는 단편입니다.

물구나무서기 (김현중)
천리안을 가졌지만 능력을 발휘할 곳을 찾지 못해 점집 도령으로 별 볼 일 없이 살아가던 ‘나’. 어느 날, 유엔 산하기관에서 요원들이 찾아와 태양의 뒤에 숨어서 지구를 향해 다가오는 운석을 투시해줄 것을 요청 받는데요. 내가 투시한 운석이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사라진다는 양자론의 코펜하겐해석 보다는 나의 어린시절, 할아버지 환갑잔치 에피소드와 남들 다하는 물구나무 서기를 못하는 주인공이 남들 다 못하는 투시를 할 수 있다는 기묘한 관계에 대한 작가의 성찰이 더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백중(百中) (김창규)
자동운전 시스템의 실수로 아내와 아이를 잃은 한 형사가 가족을 죽게 만든 바로 그 인공지능을 신입 동료로 맞아 그와 뇌를 연결한 채 임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인공지능과의 버디 수사물로 아이작 아시모프의 <강철도시>를 연상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주인공 형사의 머리 속에 심어 놓은 각종 문명의 이기들과 실체는 없이 주인공의 뇌에만 링크되어 있는 AI가 그간의 변화를 실감하게 합니다. 

목격담, UFO는 어디서 오는가 (조나단)
출근길에 우연히 UFO를 목격한 후 인생의 변화를 맞게 된 민재. 실수로 비행기를 놓친 덕분에 신종 이동수단인 에이로플레인을 경험하게 된 수미. 각기 다른 시공간을 배경으로 한 두 개의 이야기가 UFO를 통해 퍼즐 조각처럼 맞물립니다.

사랑 그 어리석은 (정보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물리적인 접촉은 금기시되고 모든 인간관계는 컴퓨터 메신저나 텍스트 송수신기 등을 통해 이루어지는 알파벳 시티. 하지만 사랑에 빠진 한 남자는 이 모든 것을 뚫고 그녀를 만나려고 합니다. 스토커의 입장에서 그린 러브스토리.

달에게는 의지가 없다 (나병우)
하루 빨리 돈을 모아 월면도시에 정착하고자 하는 월면광산 노동자인 ‘나’는 의수에 이상이 생겨 치료를 위해 지구에 귀환했다가 뜻하지 않게 범죄 사건에 휘말립니다. 상황전개가 좀 스테레오타입이라는게 걸리는군요.
80년대의 영향을 받은 90년대 한국형 SF를 보는 느낌입니다.

전화 살인 (설인효)
의문의 친족살인 사건들이 발생합니다. 공통점은 살인 사건 발생 직전에 30초 동안의 핸드폰 통화 기록이 있다는 것. 디지털 통신 수단을 이용한 연쇄살인 사건 이야기인데. 결말이 영 그렇습니다.
장애로 사랑을 잃은 천재 과학자 최선생이 청각을 이용한 뇌조정 기술을 개발하여 무고하고 단란한 가정을 파괴한다는 발상도 좀 그런데 급기야는 스스로 반성까지 하셔서 그동안의 성과를 모두 파괴하고 애송이 탐정 손에 자살을 한다는 설정은 무리 아니였나 싶습니다.

관광지에서 (박성환)
시간관광청의 주최로 타임머신을 타고 고대 인도를 방문한 ‘나’는 입적을 앞둔 생전의 붓다와 대면하게 됩니다.
보통 장르소설들이 영미권에서 발달하다 보니 타임머신으로 가는 고대라면 서양문명의 발상지이든지, 기독교, 혹은 유럽쪽 신화의 땅인데 '열반경'이라니... 이것만으로도 신선했습니다.
중간 중간 인용을 통해 지금 우리는 붓다의 진정한 모습은 알 수 없다는 떡밥을 뿌려 놓고는 주인공의 어머니의 미소에 합장하는 결말은 작가 박성환에 대한 기대를 높여 놓습니다

그러고 보니,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의 표제작도 박성환 작가의 것이였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