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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고 쪼개도 알 수 없는 세상 - 6점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김소연 옮김/은행나무

후쿠오카 신이치의 이번 책은 일관된 집중력은 없습니다.
다양한 일상 속 궁금증, 저자 자신의 경험, 과학 역사에 남을 만한 실험 조작 스캔들, 성서를 비롯해 에세이, 소설 등 기존 문학 작품의 글귀 등등이 다채롭게 나열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주장을 집중력있게 설득적인 틀안에서 단일(?)하게 펼쳐내는 형식이 아니라고 해서 '주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각각의 짧은 글을 모아서 구성하는 주장은 선명합니다.

세상은 나누고 쪼개서 분석한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무언가를 잘게 쪼개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보려고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해서는 도저히 그 본질을 알 수 없다는 것이며, 더 미세하게, 더 마이크로적인 관점으로 세상에 잣대를 들이대는 과학자들은 결국 세상을 잘못 보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 진실은 아니며, 세상의 많은 ‘부분’들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에 지나지 않고, 결국 인간은 보려고 하는 것밖에 보지 않는다고 주장이지요.

'코'를 분리해 낸다면 도대체 어디까지 도려내야 할까요? 후각을 인체에서 들어내려면 단지 눈에 보이는 구멍만이 아니라 그와 연결된 신경다발까지 파고들게 되고, 결국은 인간을 구성하는 전체를 들어내야한다는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경계는 인위적인 것이며 부분은 전체와 분리 될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그의 주장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폭을 넓혀보라는 따뜻한 충고로 다가옵니다.
 
"현미경으로 생물조직을 관찰해보면 세포가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다 배율을 높이면 갑자기 하나의 세포가 바짝 다가온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이 세포가 원래 풍경 가운데 어떤 부분이었는지 놓치고 만다."(57쪽)
는 저자의 고백은 "세상은 나누지 않으면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눴다고해서 정말로 아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한눈에 세상 전체를 볼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세다."(146쪽)라는 주장으로 완성되더군요.

후쿠오카 신이치 박사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면 <동적평형>을 읽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재미없다는 것은 아닙니다.1980년대에 있었다는 뉴욕주 코넬대학의 에프라임 락커 연구실에서 있었던 실험 데이터 조작사건 같은 경우에는 황우석 스캔들을 겪었던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익숙한 사건이기도 하고요. 박사후 연구원이라면 격하게 공감할 얘기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이탈리아 화가 카르파초의 두 회화 작품 '라군에서의 사냥'과 '코르티잔'의 예는 재미난 상식으로 알고 있기에도 좋고요. 조금만 더 적어보자면... 카르파초의 '라군에서의 사냥'과 '코르티잔'에는 약간 의문스러운 부분이 있었답니다.


뱃놀이하는 귀족을 그린 '라군에서의 사냥'의 아래쪽에 느닷없이 꽃 한송이가 떠 있었고, 고급창부를 뜻하는 '코르티잔'에서는 귀족적인 배경과 여인들의 공허한 시선이 의문이였죠.

이 미스터리는 각각 미국과 이탈리아 미술관에 소장돼 있던 두 작품을 이어붙이자 비로소 풀립니다.

'라군에서의 사냥'의 아래쪽에 떠있던 꽃은 '코르티잔' 윗부분에 잘린 꽃병에 꽂혀있던 것이었고, '코르티잔'은 귀족들이 뱃놀이를 하는 호수에 돌출된 호화로운 발코니를 배경으로 했던 것이죠.


인위적으로 분리한 부분만 볼때는 알 수 없던 것이 전체를 파악하자 명확해지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과 이탈리아의 미술관에서는 아직도 두 그림을 분리해서 따로 소장하고 있을까요?
요건 책에서도 안나오던데 궁금하군요.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