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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안녕, 인공존재!

imuky 2010. 11. 19. 18:15
안녕, 인공존재! - 6점
배명훈 지음/북하우스

타워에 이은 배명훈 작가의 소설집입니다.
아마도 타워의 성공이 없었다면 나 올 수 없었던, 그러니까 사람은 일단 성공하고 봐야한다는 세상이치의 결과물입니다. ^^a

각기 다른 곳에서 발표되었던 총 8편의 작품이 실려 있는 이 책은 토종 SF작가의 상상력과 끈기, 그리고 그 값진 결과물을 만나 볼 수있는 의미있는 물질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한 편, 한편 스피디하고 재치 있으며 즐겁지만 어딘지 아쉬운 뭐 그런겁니다. 써 놓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군요. 흐~

실려 있는 작품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크레인 크레인_ 2009년에 쓰고 이 책에 첫 발표
누군가를 만났어_ 행복한 책읽기, 2007
안녕, 인공존재!_ 문학동네, 2009년가을
매뉴얼_ 유, 로봇, 황금가지, 2009
얼굴이 커졌다_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2, 시작, 2009
엄마의 설명력_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 창비, 2007
변신합체 리바이어던_ 웹진, 문장, 2010
마리오의 침대_ 웹진, 거울, 2009

그리고 배명훈 작가의 글만큼이나 흥미로운 것이 이 책 말미에 부록처럼 달려있습니다.
바로 기성문단의 총망 받는(아니면 이미 받아서 자리 잡은) 평론가 신형철의 해설입니다.

그는 배명훈의 소설을 일단 상상력이 기발한데 문장은 단정하고, 박학다식이 어지간한데 스토리는 명쾌하다면서 그 이유를 배명훈이 대개 하나의 개념으로 요약할 만한 이론/입장을 소설적 장치로 활용하면서 서사를 이끌어 나가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그리고는 엉성한대로 이것에다 '개념적 장치'라는 이름을 붙이고 일종의 태그(tag)라고 설명하면서 해설을 시작하는데요.

작가가 아닌 평론가의 입장에서 신형철의 태그를 살펴보면, 일단 누군가를 만났어의 태그는 숭고(the sublime)입니다.
고고심령학회 소속 연구원인 '나'는 중국 어느 지역에서 유목민 계열의 정착민,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스스로를 몽골인이라 불렀던 투르크계 상인들의 혼령을 추적 중입니다. 문제는 그곳에 공룡의 화석을 발굴하러 온 정직한 중국인과 불발탄을 찾으러 온 일본측 발굴팀이 한 장소에서 섞이게 된다는 것이죠. 하하하
무엇이 그들을 여기로 불러 모은 것일까요?
곧장 결론으로 가보면 "공룡들이 땅 위를 활보하던 시절에, 저 우주로부터 누군가 이곳에 탐사차량"을 보내 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는 별들의 평원과 연결되어 그냥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이를 두고 신형철은 칸트의 판단력 비판을 끌어와 '숭고'의 체험이라고 하지요. 그러니까 이 소설은, 외계생명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한 인간이 어떻게 상처를 딛고 자기 자신을 긍정할 수 있게 되는가에 관한 이야기랍니다.
뭐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합니다.

두번째 제시하는 태그는 안녕, 인공존재의 코기토(Cogito)입니다.
컴퓨터 관련 회사에서 신상품 연구개발원으로 일하던 신우정 박사는 조약이라고 부르는 존재성 제품을 남기고 자살합니다.
이 제품은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회의공법으로 디자인 되어 Dubito™회로라는 회의회로를 통해 데카르트의 존재 추출법을 반복시행하여 순도 높은 결정형태의 존재, Cogito™가 발생한답니다. 그리고 존재가 특정한 형식으로 스스로를 만나는 순간 우주의 모든 법칙과 제약을 초월하는 폭발적인 깨달음이 발생할 수 있다는군요.
햐~ 재미있네. 결국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순수한 회의를 통해 득도할 수 있는 기계장치를 만들고 자살한거네....
라니까. 이 소설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게 아니라 부재의 현존. 즉 가장 가까운 사람들도 눈치 채지 못한 외로움과 우울증으로 죽어간 한 과학자의 존재가 그의 유작 덕분에 비로소 다른 존재들에게 전해지는 존재가 존재를 이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이야기랍니다.

매뉴얼은 성 크리스토퍼(St. Christopher)로군요.
작은 어린아이 손님을 맞아 짊어지고 강을 건너는데 아이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무거워지더니 "너는 방금 세계 전체를 짊어지고 건넌 것이다. 나는 세계를 구원할 그리스도다."라는 말을 들었다는. 그래서 그리스도를 운반함이라는 뜻을 갖게된 크리스토퍼가 예언자 혹은 구원자일지도 모르는 미성이를 맡아 기르려고 하는 조카바보인 이모(나)랍니다.
이쯤 되면 "평론을 읽기전에는 내가 이런 뜻으로 시를 쓴거였는지도 몰랐어."라던 어느 시인이 생각납니다.
세계의 구원이라는 거창한 사업도 어쩌면 나의 인륜적 애정과 같은 작은 힘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하는 것이 온당하다지만 뭐 결국은 인류가 멸망하는 것 같던데 "이런!"입니다.

그리고 얼굴이 커졌다에는 증상(symptom)이란 태그를 붙였습니다.
뭐 얼굴이 커졌다니 증상 맞지요. 그리고 주인공이 삶의 의미가 사랑을 만나고 아이를 낳는 소소한 행복들에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익숙한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증상은 사라집니다. 굳이 카프카의 변신이나, 김영하의 고압선, 황정은의 백의 얼굴을 들먹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이야기죠.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나머지 4편의 소설에는 태그를 붙이지 않았습니다.

크레인 크레인에 대해서는 신을 은유하는 크레인이 은유가 아니라 실제 신의 형상을 하고 나타나 주인공 두사람의 문제를 해결해 버리는 결말부가 솔직히 당혹스럽다고 고백하더니 이 소설이 다루고 있는 선택과 결단의 서사와 조화를 이루는지 따져봐야 할 것이랍니다. 정말로 신이 데우스 엑스 마티나 같은 기계장치의 신이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를 풀어 놓기 위해 유부남과 처녀의 사랑이야기가 필요 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가 봅니다. 아마도 선택이나 결단 쯤으로 태그를 붙이려다가 아닌가 싶어서 포기한 듯 싶은데 그럼 태그 붙이기를 첨부터 포기하고 새롭게 해설을 시도해보지 그러셨어요?라고 묻고 싶은 대목입니다.

엄마의 설명력은 사랑스러운 이야기라면서 프로이트의 가족 로망스(family romance)를 변주했다고 해설합니다.
한국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마이너리티에 속하게 '' 혼혈소녀 주인공에게 네가 차별 받는다'' 그것은 너의 출생이 청동설을 고수하는 소수의 고귀한 사람들로 부터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차별의 근거를 오히려 긍지의 근거로 전환시킨답니다. 문제는 소설 어디에도 차별을 심각하게 언급하거나 결정적인 동인으로 다룬적이 없으며 오히려 지동설을 그럴싸하게 포장하여 믿게 만드는 엄마의 설명력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혼혈소녀는 반드시 한국사회에서 마이너리티에 속하게 ''것이며(사실은 중국에 화성 탐사 프로젝트 자리에 돈을 많이 받고 들어간다), 차별 받는다''(그 뒤로는 대체로 행복했다)이라는 편견만 없다면 지동설이 진실이라는 우스개를 진지하게 즐길 수 있었을 텐데. 라고 생각하니 안타깝습니다.

한편 변신합체 리바이이어던은 명백하게 '전체주의'다 라기 보다는 52만 몇천대의 로봇이 합체할 수 있을 때까지 밀어 붙인 엔지니어들과 조정사들의 변신과 합체에 대한 집착을 정말 현장에 있어 본 사람이 아니면 함부로 말하지 않았으면 하고, 마리오의 침대는 작가의 서비스라 판단했기 때문에 췌언을 덧붙이지 못한 것에 반성했으면 합니다.

그러면 자신은 장르문학에 대한 편견은 갖고 있지 않다고 스스로 변명할 필요도 없고, 소설은 인간의 진실을 들여다 보는 것이며 그래야 당당한 '문학'이라고 주장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발합시다.
주류 여러분.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