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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아빠의 우주여행

imuky 2011. 8. 19. 18:08
아빠의 우주여행 - 8점
양원영 외 지음/황금가지

황금가지에서 펴낸 한국SF단편선 <아빠의 우주여행>입니다.
총 10편의 단편이 실려있습니다.

양원영 <아빠의 우주여행>
표제작입니다. 주인공 이세영은 7살때 부모를 잃은 고아입니다. 그러나 국가복지 사업의 일환으로 실시된 '페어런츠 기프트' 즉, 보호자 안드로이드를 활용한 대리부모 프로젝트의 수혜자로 12년간 돌아가신 아버지와 98.8% 일치하는 보모 로봇 이호석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사건은 이세영이 성인이 되는 날. 프로젝트 수혜기간은 끝나고, 보모 로봇 이호석은 수거된다는 겁니다.
주인공 이세영은 수혜기간이 끝난 이후에 사용자 부담의 유지 관리비를 지불하며 안드로이드 부모와 계속 살것인가? 말것인가?의 고민에 빠지지요. 결론은 뻔합니다. 행복하게 오래오래 같이 삽니다. ㅎㅎ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주인공이 아직 고민 중이던 때. 안드로이드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아빠의 꿈은 뭐야?" 되돌아 온 답은 "우주여행"이지요. 바로 이 대목에서 평범한 과학소설에서 사람냄새가 나는 소설로 전환 됩니다.
비록 방송을 포함한 모든 이벤트에서 떨어지고, 아빠를 우주관광이라도 보내드리려는 계획은 물거품이 되지만 편도행 외우주탐사선에 이름이라도 올려서 우주로 보내드린 딸과 네임태그를 받고 즐거워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부모의 소원에 대처하는 현명한 딸의 모습을 따뜻하게 보여줍니다. 간만에 만난 포근한 SF였습니다. 

김현중 <우리는 더 영리해지고 있는가?>
대뇌반구간 보조신경연결체 삽입술, 일명 아인시술(Auxiliary Intercerebral hemisphere Neuro-connector Insertion Surgert ; AIN)이라는 지능을 높일 수 있는 시술법이 일반화된 사회의 이야기입니다. 뇌에 시술하는 요법이라 머리에 생긴 수술자국이 차별의 표식이 되는군요. 슬픈일입니다. 그러나 더 슬픈일은 가짜 훙터이지요. 모르고 속기도 하고, 알면서도 속이기도하는 이 흉터를 매개로 첫사랑과의 이별. 그리고 우연한 만남. 그리고 또, 그저그런 삶을 묘사합니다. 소년취향의 해맑은 한국SF의 분위기 속에서 드물게도 성인취향의 에로스함이 묻어나는 희귀한 단편입니다. 첫사랑의 여인이 30대 마사지걸이 되어있고, 자신은 불법의사가 되어있는 현실은 영어발음을 위해 혀수술을 하는 한국의 현실 너머의 인생의 쓴맛을 느끼게 합니다.

류형석 <머리 사냥꾼>
의체와 기억보존장치가 보편화된 사회를 배경으로 딸을 잃은 아비와 머리를 잘라가는 연쇄살인범의 대결을 그린 작품입니다.
보통은 기억보존과 의체화에 대한 이런저런 의견을 풀어 놓기 쉬운데, 그런거 하나 없이 스릴러에 집중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기억보존장치를 이용하여 육체를 바꿔가며 추적을 피해 온 연쇄살인범을 처단하고 범인의 백업용 기억보존장치를 손에 넣은 주인공이 그 보존장치를 이용하여 복수를 기획하는 마무리는 제법 섬뜩합니다.

정소연 <처음이 아니기를>
<처음이 아니기를>은 정상적인 장기를 외부에서 침입한 것으로 인식하여 자신의 장기를 스스로 파괴하는 SDT라는 싱종 바이러스성 전염병외에는 그다지 SF적인 설정은 없습니다. 그저 누군가의 첫기억, 그것도 아픈 첫기억이 되고 싶지 않다는 작가의 바램이 진하게 묻어나는 작품입니다. 하긴 어느정도 동감은 됩니다. 첫사랑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누군가에게 첫번째 죽음으로 남는 것만은 저도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으니까요.

정보라 <스위치, 오프>
유전자 스위치를 조작하여 남자도 여자도 선택할 수있는 상황에서 '만인의 만인을 향한 분노'로 가득찬 나라에서 탈출한 레즈커플의 모험담입니다. 유전자 스위치 조작으로 두 여자는 두 남자로 변신하여 탈출했다는데, 성별이 영구적으로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유전자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결과라는 아이디어를 위해 무리를 한 것 아닌가 합니다. 게다가 현실의 반영이라는 목표를 위해 한국의 은유로 보이는 '서로에게 화만 내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라는 설정은 너무 단순하고 스테레오타입이라 전혀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김두흠 <애니멀 201>
탈출한 인간 병기가 다시 잡혀오면서 덤으로 민간이 여자 한명까지 희생시키는 이야기.

임태운 <아름다운 감금>
알 수 없는 공간에 갇힌 T는 제공되는 식사와 운동기구를 이용해 기약없는 탈출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허무하게도 어느날 갑자기 식사공급이 중단되고 T는 굶어 죽습니다. 헐~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아마도 지구가 멸망한 후에.....
수명이 다한 행성에 남아 있는 잔류사념을 채취, 복원하는 외계인의 손에 의해 기계장치 속에 부활합니다.
그의 이름은 '미스터 타마고치.'
하하하하하

정희자 < 해바라기>
테라포밍이 실패한 물의 혹성에 잔류한 소수의 인류는 선박형 부유도시에 살며 모계사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다 비가 그치고 맑은 하늘이 펼쳐지면 태양을 맞이하려 태양제를 열지요. 그런데 알고 보면 그 태양제라는게 난교파티랍니다. 그 날만은 남자가 여자를 선택하고 섹스를 하고, 아기를 만든다니 이런 이런입니다. ^^a
중심 사건은 뭉글이라는 토착생물을 바다로 돌려 보내주는 이야기입니다마는 중심 아이디어는 이 뭉글이라는 놈들은 물에 삼차원적으로 기억을 보존하고 이를 공유한다는 설정입니다. 뭉글이도 사람도 태양이 떠오르면 해맞이를 해서 제목이 해바라기인 것 같습니다마는 물을 매개로 소통하고 기억하고 공유한다는 아이디어만이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정해복 <코르사코프 증후군>
코르사코프 증후군이란 건망증후군입니다. 일종의 기억장애죠.
그래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아이들 22명을 교살하고 먹어버린 사이코패스를 냉동시켰다가 풀었다가 하면서 정신교화를 시도하는 일련의 과정을 묘사합니다. 어쩐지 '환상특급'의 한 에피소드 같은 단편입니다.

곽재식 <그녀를 만나다>
뇌이식이 가능한 미래. 그러나 새로운 몸은 미성숙한 신체이므로 두개골의 크기가 작고 또한 적응을 위해서는 새로운 몸의 조직을 일부 살려두어야 하기 때문에 원래의 뇌를 그대로 이식하기에는 너무 크다. 그렇기 때문에 원래의 뇌 중에서 일부만 새로운 몸에 옮길 수밖에 없고, 하나의 뇌를 2개의 신체에 나누어 이식하여 성공한 쪽이 본래의 신분을 이어간다는 이야기. 문제는 2개의 신체가 모두 이식에 성공한 경우 어떤 쪽이 본래의 신분을 이어갈 것인가입니다.
주인공은 연속성 증명에 실패하여 다른 신분으로 살아가야하는 처지가 되지요. 그리고 이 점이 반전 포인트입니다.
그러나 반전 포인트 보다 가슴아픈 것은 이쪽 뇌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기억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는 점이죠.
죽었다가 살아나도 한 사람만을 기억한다. 그것도 뇌의 일부분만 지니고 있어도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뇌 전체에 각인되어 있어서 아무리 조그만 조각의 뇌를 이어 받았다 하더라도 그녀만은 기억하고 사랑한다는 이야기가 절절합니다.
정체성 고민 같은 골치아픈 주제를 슬쩍 사랑으로 대체하여 애절한 러브스토리로 꾸민 솜씨가 돋보이는 단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