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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타임슬립 - 8점
필립 K. 딕 지음, 김상훈 옮김/폴라북스(현대문학)

필립 K. 딕.

영화 <블레이드 런너>,<토탈리콜>,<마이너리티 리포트>,<임포스터>,<페이첵>,<스크리머스>,<넥스트>,<스캐너 다클리>,<컨트롤러>의 원작자. 그리고 SF계의 3대 문학상 중의 하나가 본인의 이름인 거장입니다 (참고: SF 3대 문학상은 휴고상, 네뷸러상, 필립 K.딕상입니다)

그리고 <화성의 타임슬립>은 폴라북스에 총 12권으로 기획한 필립 K. 딕 걸작선 중 그 첫번째 권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1994년 식민지 화성, 이곳에서는 인구 증가와 환경오염으로 한계에 다다른 지구를 떠난 사람들이 물자 부족에 시달리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던 과거의 아픈 경험을 잊기 위해 수리공으로 일하면서 살아가는 주인공 잭 볼렌은 화성의 수자원노동조합장인 어니 코트와 만나 일하게 되면서 사건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는데요.

제대로 된 정부가 없는 화성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군림하고 있던 어니 코트는 UN이 화성의 황무지를 구입해서 거대한 복합 거주지를 세울 작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UN의 거주지가 들어서면 자신의 입지가 줄어들 거라 생각한 어니는 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자폐아 만프레드의 특수한 예지능력을 이용해서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합니다.

결국 요약하자면 기득권을 잃을 처지에 놓인 권력자가 우연히 발견한 자폐증 소년의 예지능력을 이용하여 부동산 투기를 획책하는 와중에 인구 6명당 1명 꼴이라는 분열증에 시달리는 주인공 잭 볼렌이 연류되어 겁나게 고생하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결말은 잭 볼렌이 집으로 돌아오면서 끝나지요.

우연히 사건에 연류되는 수리공 잭 볼렌과 수자원노동조합장 어니 코트, 그리고 그의 정부인 도린 앤더튼의 관계는 하드 보일드합니다. 여기에 자폐증 초능력자 만프레드가 등장하여 이야기는 러브 크래프트적인 세계로 빠져 버리지요.

그 사이 필립 K. 딕 특유의 정체성 혼란, 가상현실, 시뮬라크르, 약물에 의한 의식의 변용, 기억의 혼란, 불안감, 편집증, 음모론, 거대 기업, 그리고 삶의 치졸함이 녹아 있습니다.

자폐증을 비롯한 정신병을 시공간의 인식이 뒤틀어진 감각으로 해석하고, 무너진 시공감을 통해 타임슬립을 시현하는 방식은 퍼스널 리얼리티(자가현실)라는 개념을 통해 초능력을 설명하는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을 연상시킵니다.
다만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은 퍼스널 리얼리티가 갖는 모든 문제점을 뒤로 돌리고, 순수하게 액션에만 치중한 라이트소설인데 비해서 딕의 소설 <화성의 타임슬립>에서는 앞서 언급한 러브 크래프트의 세계 같은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그 무엇인가와 마주치게 인도한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주인공 잭 볼렌이 지구에 살 때. 오직 신축 주상복합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 살다가 마침내 그 목적을 달성한 이후 정신분열증 증세를 겪는다는 설정과 화성으로의 도피는 64년에 미국에서 쓰여진 작품이 아니라 2011년에 서울에서 쓰여진 작품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도 합니다.
도시 외곽도 아니고, 황무지 화성으로까지 도피 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투기의 망령이 쫓아오는 것을 보면 탐욕의 힘은 (정말) 쎕니다. 그 무엇도 막을 수 없을 것 처럼요.

참고로 현재까지 필립 K. 딕 걸작선은 <화성의 타임슬립>,<죽은의 미로>,<닥터 블러드머니>,<높은 성의 사내>까지 국내에 출간 되었으며 총 12권을 기획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영화 <토탈 리콜>은 콜린 파렐 주연으로 2012년을 목표로 리메이크 제작 중이며 <블레이드 런너>도 리메이크 소식이 있더군요.

앞으로도 쭈욱~ 필립 K. 딕의 세계를 만나 볼 기회가 남아 있다는 얘기입니다.
기대. 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