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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 팻, 비만과 집착의 문화인류학 - 돈 쿨릭.앤 메넬리 엮음, 김명희 옮김/소동 |
체중은 시대의 화두죠. 그렇습니다. 제 자신조차도 몸무게, 좀 더 구체적으로는 살에 대해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 책은 13명의 인류학자가 세계 각지에서 팻에 관한 문화를 수집하고 분석한 결과입니다.
14개의 글 하나하나가 흥미롭고, 또한 의외입니다.
일단 영어 단어 ‘fat’은 ‘살찐, 기름진, 풍부한, 비옥한, 유리한, 지방, 기름, 비만, 살, 윤택’ 등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부터 집고 넘어가죠. 그리고 이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첫번째, 니제르 아랍인의 이상적인 몸매에 관한 보고입니다.
이 보고서의 저자인 레베카 포페노에 따르면 니제르의 모든 종족, 아프리카의 여러 지역의 여성들은 체중을 재면서 날씬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더 살찌기를 소망한다는군요.
이 지역 반유목 아랍여성들에게 뚱뚱한 몸매는 곧 존재 이유이며,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찐 살은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될 능력을 나타낸답니다.
물론, 이 지역의 여성들도 이상적인 몸매에 대한 관념을 가지고 있지만 서구나 서구화된 우리사회 같은 정도의 스트레스는 존재하지 않는답니다. 그리고 그 이유로 자기 정체성을 오롯이 자신이 규정해야하는 상황과 공동체 안에서 별 고민 없이 확립할 수 있는 상황의 비교에서 찾습니다.
세계 어디에서 살든지 이상적인 몸매라는 관념은 존재하지만 이상적인 몸매의 형태는 서로 다르며 이상적인 몸매를 강요 당하는 스트레스의 정도도 다르다는 사실이 위안이 될려나 모르겠습니다.
앤 메넬리의 섹시하고 순수한 기름은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에 대한 토스카나 사람들의 인식에 대한 글입니다.
뭐, 기름 중에서는 찬양 받는 기름도 있군요.
메리 와이즈맨텔의 흰 살은 안데스 주민들 사이의 괴담인 '피스타코 이야기'에 등장하는 창백하고 끔찍한 악당의 이야기입니다. 안데스 주민의 검은 피부와 대조되는 이 하얀 피부의 피스타코 이야기는 착취자 백인의 우화라는 점은 명확합니다.
제게는 한국의 80년대를 풍미하던 반식민 반자본 이데올로기 투쟁을 위한 계몽용 우화 같은 느낌이 오기도 합니다마는 현재의 안데스 주민들 사이에 자생적으로 떠도는 이야기라니 그럼 느낌을 받은 이유는 저자의 세계관 덕분인듯 합니다.
존 그로스의 멋진 뚱보는 힙합문화에서의 뚱보의 이미지. 특히 남성 뚱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빅 펀이나 다른 뚱뚱한 래퍼들에게, 뚱뚱한fat 몸과 멋진phat 음악은, 명예와 금전적 성공을 의미한답니다. 비만을 찬양하는 랩 음악은, 뚱뚱함을 역겹고 부끄럽다고 말하는 주류 미국인의 이상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라는 거죠.
돈 쿨릭의 뚱보 포르노는 이 책에 실린 13편의 글 중에서 제게 가장 당혹감을 준 글입니다.
일단 뚱보 포르노라는 것이 있는 줄도 몰랐고, 수요가 있다는 사실도 놀랍습니다.
그러나 일단 존재하고, 그 존재 자체가 매우 다층적이라 흥미롭습니다.
백인 여성위주라는 사실도 뭔가를 증거하는 것 같고, 무엇보다 성교 없이 먹는 모습만이, 그것도 거하게 먹는 모습만이 보인다는 이 뚱보 포르노는 가학피학성 성교처럼 쾌락을 성기로부터 분리해 다른 신체부위에 분산시킴으로서, 결국 쾌락을 느끼는 몸이 무엇인지를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놀랍습니다.
아무튼 완전히 새로운 영역이더군요.
레나 젬조에의 천상의 몸은 굶어서 성인된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금기를 넘으며 쾌락을 느끼지만 당연한 것을 거부함으로써 숭고함을 얻는가 봅니다.
파니 앰보슨의 살에 관한 담화는 스웨덴의 십대 소녀들의 지방에 관한 담화를 관찰하고 기록한 글입니다.
좀 어렵습니다마는 아무튼 정리하자면 지방이란 소녀들의 담화 속에서만 존재하게 하고 실제의 몸에서는 부재하게 해야하는 것이며, 이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성공적인 소녀와 사회적인 실패자 사이을 구분하게 해준답니다. OTL
돈 쿨릭과 타이스 마샤도-보르헤스의 지방 빼는 약을 요약하자면 브라질 국민 대다수가 한 달에 버는 돈보다 더 믾은 돈을 들여서 설사와 기름진 배설물을 유발하는 다이어트 약 한 상자를 복용한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브라질의 부유한 도시 여성처럼 산다는 환상 속에 살 수 있고, 그들의 지방이 빠지기 바라면서 또한 제3세계, 빈곤, 유색 인종과의 연관성도 자신의 몸에서 배설하여 화장실 물로 쓸어버린다네요. 결국 다이어트 알약에 든 것은 화학성분이 아니라 부유하고 이상적인 제1세계인 겁니다.
9번째 글인 질리언 알 캐비노의 돼지비계는 올리브유처럼 찬양 받는 기름. 그것도 덩어리. 그것도 돼지에서 나는 기름 덩어리에 관한 글입니다. 세상이 모두 돼지비계를 외면하는 것은 아니라니 다행입니다.
마가릿 윌슨의 커피 한 잔의 탐닉은 시애틀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매일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스타벅스에 가서 무지방 음료를 주문하고 나서 휘핑크림을 첨가한다든지 저지방 빵을 주문하면서 버터나 잼을 함께 달라고 하는 눈가림은 도대체 왜하는 걸까요?
탐닉과 절제, 그리고 보상이라니... 병신 같지만 일상이랍니다.
11번째 글은 마크 그레이엄의 혼돈스런 지방입니다.
에이즈 치료요법 중 하나인 칵테일요법. 정식으로는 '병행요법(Combination Therapy)'이라는 몇가지 치료제를 섞어서 사용하는 방법을 취하면 지방이영양증(lipodystrophy)라는 병에 걸릴 수 있답니다.
지방이양증은 지방 대사의 분포가 비정상적으로 변하는 것을 가리키는 의학용어로 지방 축적과 손실이 엉망진창으로 일어난답니다. 지방은 TV다이어트 프로그램에서 말하듯이 좋고, 나쁘고로 단순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군요.
줄리아 해리슨의 스팸은 하와이의 대표음식이 되어버린 스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와이 주민들이 스팸을 좋아하는 것이 본토인과 자신을 구별짓는 기제라는 것은 흥미롭지만 혹시 평생 기름을 먹는 대가가 구별이 아니라 승리자. 즉 미국의 전리품이라는 증거가 아닐까 우려됩니다.
마티 번즐의 살찐 게이 애호가는 뚱보 포르노 만큼이나 충격적인 이야기입니다.
뚱뚱한 동성애자의 진보적인 전략이 이런 식으로 벌현되는 것이 과연 효과적인가에는 의문이 따릅니다.
마지막으로 앨리슨 미첼의 짜증난 비만인권 운동가는 유쾌한 도전기입니다.
뚱뚱한 여성이라고 해서 인스턴트 음식만 먹는 게으른 사람이 아니라는 선언. 그리고 그녀들의 목소리에 귀기울 줄 아는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제게는 일종의 '다름인정하기'처럼 다가 옵니다마는 그 이상의 삶의 태도에 관한 되돌아보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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