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장르문학이라고 하면 SF뿐만이 아니라 추리, 공포, 판타지를 모두 아우르는 말입니다.
깜빡했지요... OTL
총 10편의 다양한 단편들이 실려있습니다. 물론 SF도 포함입니다.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디 북 - 듀나
에소릴의 드래곤 - 이영도
만냥금 - 은림
재봉틀 여인 - 구병모
생존자 - 장은호
바람의 살인 - 정명섭
밤의 노동자 - 최혁곤
실 인간 평화로운 전쟁 - 김탁환
가울반점 - 임태운
체이서 - 문지혁
2009년 4월부터 1년간 네이버 오늘의 문학에 선정된 장르 문학 85편 중 인기 작품 10편을 모았다더군요. <드래곤 라자>의 이영도, <눈먼 시계공>의 김탁환, <위저드 베이커리>의 구병모, <대리전>의 듀나, <B컷>의 최혁곤을 비롯하여 한국 장르 문학에서 주목할 만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들의 신작(출간 당시에는...) 단편집입니다.
특히 이영도의 '에소릴의 드래곤'은 선정 당시 폭발적인 호응으로 3일간 십여 만 명이 볼 정도로 화제를 불러모았으며, 문지혁 작가는 데뷔작 '체이서'로 한국 사이버펑크 하드보일드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평입니다.
디북 듀나의 소설집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에도 수록되어 있는 작품입니다. 본래 디북(혹은 디벅 Dybbuk)은 유대민속에서 나오는 육체와 분리된 영혼으로 사망자의 악령을 뜻하는 거라더군요. 불구가 된 현실 세계의 육체를 떠나 제3세계라는 가상 세계에서 생활하게 된 수린과 붙박이들의 모습이자, 근원적이며 순수한 공포의 다른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는 제목입니다.
매트릭스라는 공상과학의 설정을 공포판타지로 연결하는 발상이 다시 읽어도 신선합니다.
에소릴의 드래곤
에소릴에 기거하는 드래곤 란데셀리암은 나리메 공주를 납치해 갑니다. 자신의 몸값을 지불할 테니 풀러달라는 공주에게, 란데셀리암은 대가를 원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공주의 맛난 고기를 먹고 싶을 뿐이라고 말해 경악케 하는데요. 이영도스러운 이영도만의 유쾌한 판타지소설입니다. 중2병 증상 없이 맛깔스러운 판타지를 제조하는 이영도의 솜씨가 돋보입니다.
만냥금
부동산 투기로 거리에 나앉게 된 남자와 어린 아들. 거렁뱅이 생활 도중 아들이 주워온 4000원으로 요기를 하려다 식당에 있던 만냥금 나무에 닿은 천원짜리가 만원짜리로 변하는 놀라운 일을 겪게 됩니다. 남자는 이내 만냥금을 훔쳐 도망치는데요. 읽는내내 아들의 행방이 궁금해지는 소설입니다. 아니나 다를까....라는 결말입니다.
재봉틀 여인
"잘려나가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머리카락, 손톱, 온몸의 털끝 하나하나. 사람의 세포 하나하나는 수만의 정보와 감정을 간직하고 있어요. 심장이나 두뇌를 꿰맨다고 해서 사람의 온몸에서 솟아나는 감정을 완전히 막을 수 없지요." 그러니까 애초에 감정을 재봉질하기는 왜 했답니까? 주인공에게 관심두던 여자의 변심이 느닷없지만 짧은글의 한계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생존자
갑작스럽게 납치당해서 깨어나 보니 흰 방 안. 방에는 자신보다 어린 여자 아이 둘도 함께 납치되어 있었다. 자신들을 납치한 이는 사람을 실험 도구로 사용하는 정신병자. 그는 세 명의 목숨 모두를 50% 확률로 살릴 것인가 아니면 한 명의 목숨만을 100% 살릴 것인지를 실험한다고 하는데.........라니 어디서 본 설정이지요. 그렇습니다. 영화 쏘우같은 이야기입니다.
바람의 살인
정명섭 작가의 고구려를 배경으로 한 문달 설천의 추리 연대기 중 한 작품. 한 병사가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문달과 설천이 나섭니다. 자살자의 나약함 때문에 다른 군졸들마저 피해를 입고 있다는 주장 속에서 문달과 설천은 의문의 행적을 발견하는데요. 군대내 가혹행위를 다루고 있습니다마는 추리가 영~
밤의 노동자
기자인 나는 서울에서 벌어지는 여성 연쇄살인마의 인상착의를 아는 제보자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걸려온 전화에서 살려달라는 옛 애인의 목소리. 지금은 인기 배우가 되어 있는 그녀가 누군가에게 납치되어 있다! 일단 그녀를 구해야 하는데.... 못구합니다. 옛 애인의 스토커가 연쇄살인범이 되어 나타났다는 설정에 무리가 좀 있는듯 싶고요. 범인체포의 쾌감도 포기하고 내린 결말이 아쉽습니다. 뭐 결정적인 증거는 있지만 다음기회에라는 분위기입니다. 덕분에 무섭기는 하더군요. 으흐흐
실 인간 - 평화로운 전쟁
나(김탁환)은 업무로 알게 된 사진작가 강영호의 작업실에 갇혀버립니다. 강영호는 나에게 자신이 원하는 소설을 집필하기 전에는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협박하고, 저항하던 나는 지옥 같은 고통을 맛보는데요. 강영호가 초자연적인 존재라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그래서 뭐?라는 생각입니다. 작가의 머리 속에 들어 있는 환상적인 아이디어가 좀 어정쩡하게 구체화한 느낌입니다.
가울반점
전라도 촌구석 수만리라는 작은 마을의 유일한 자장면집 만리장성. 그런데 갑자기 근처에 가울반점이라는 새로운 자장면집이 생기며 만리장성은 망해 갑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가울반점의 비밀은 미식을 연구하는 외계인의 시험장이였다는군요. 하하하.... 여러가지 서브컬쳐를 솜씨있게 삽입하여 웃음을 주는 솜씨가 꽤 덕후스럽습니다. 게다가 한국의 현실공간을 공상과학의 판타지로 연결하는 국산SF의 형식도 잘 살아 있습니다. 이미 읽었던 듀나와 이영도의 글을 제외하고 가장 재미있게 읽은 단편입니다.
체이서
여자가 살해당하자 안드로이드 체이서(탐정)들이 조사를 시작합니다. 현장에서 나온 쪽지 한 장을 단서로 사건 추적을 시작하는데. 하지만 안드로이드의 인조눈은 수명이 있고, 곧 그 수명이 다할 때. 그 전에 범인을 잡고 보상금을 받아 인조눈을 교체해야만 한답니다.... 꽤 그럴싸한 설정과 하드보일드 느낌이 물씬나는 단편입니다. 게다가 매우 중요한 질문도 하더군요. 육체가 살기위해 영혼을 교환하다면 육체쪽이 나일까요? 영혼이 든쪽이 나일까요? 이게 왜 그러냐면 주인공이 자신의 칩을 다른육체와 교환해 버리거든요. 대부분의 공상과학 소설에서 안드로이드의 칩은 기억 혹은 영혼인데 이것을 바꿔 넣고 의식이 까무러지니 눈뜨면 어떤 상황일지가 궁금해지더라고요. 뭐 어려운 문제는 피해갈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겠지만 일단은 새로운 설정이라 뒷일이 궁금해졌습니다. (메인칩이란 것이 고유넘버를 넣은 태그에 불과하다면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마는.... 아니면 또 어쩔까나라는 쓸데없는 설정놀이입니다.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