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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소녀 - 10점
로버트 F. 영 지음, 조현진 옮김/리젬


시간여행은 언제나 매력적인 소재입니다. 아마도 살면 살수록 되돌리고 싶은게 많아지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가끔은 되돌리는 이야기가 아니라 시작하는 이야기일 때가 있습니다. 로버트 F. 영의 단편 '민들레 소녀'가 바로 그런 이야기죠. 그것도 보통 시작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을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시간여행자의 사랑이야기라면 우선 떠오르는 책이 '시간여행자의 아내'입니다. 민들레 소녀의 놀라운 점은 1,000쪽 시간여행자의 아내 이상의 애틋함을 20쪽으로 구현해 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놀랍죠?


 
네, 놀랍습니다.


 
그리고, 짐작컨대 이 놀라운 결과의 원인은 단 한문장 때문인듯합니다.



 
"그제는 토끼를 보았어요. 어제는 사슴, 오늘은 당신을."
 
....
 


이 한문장이 20쪽짜리 시간여행 로맨스에 부여하는 힘은 1,000쪽짜리 장편소설에 버금갑니다.
 
일본애니 클라나드에서 아이템으로 쓰이고,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에서는 아내가 남편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선물하는 사랑의 책으로 묘사됩니다. 그런데 그럴만합니다. 민들레 소녀를 사랑하는이에게 선물하십시요. 
 
 
참, 민들레 소녀는 20쪽 단편이고, 표제작이니 나머지 단편은 무엇무엇이 있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혹시 궁금하실까봐 적어 놓습니다.
 
21세기 중고차 매장에서 : 사랑이야기. 그런데 사회비판 같기도 함. 그래도 사랑이야기.
프라이팬 조종사 : 외계인이 나오는 사랑이야기. 외계인과의 사랑이야기는 아님.
팝콘 튀기는 TV : 미디어자본 비판. 노골적임.
별들이 부른다 : 우주 혹은 외로움을 사랑한 남자 이야기. 아닐지도 모름.
시인과 사랑에 빠진 큐레이터 : 시인을 사랑한 큐레이터 이야기. 
당신의 영혼이 머물 자리 : 서로를 사랑한 시인 로봇과 자동차를 사랑한 로봇 이야기.
과거와 미래의 술 : 가족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저승에서 돌아와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남자 이야기. 어떻게 보면 이것도 시간여행자인데, 안내인이 가롯 유다라는게 함정.
파란 모래의 지구 : 당대에 흔했던 화성연대기를 입장을 바꿔서 썼다. 화성을 보며 운하를 떠올리는 지구인의 대척점은 지구를 보며 파란모래를 상상한 화성인이다.
하늘에 새겨진 글자 : 사랑은 숭고한데, 섹스는 욕이 되는 더러운 세상.
약속의 별 : 우주선 조종사는 이공계. 이공계는 사랑에 서툴다. 결국 홀아비 종교인이 된다.
춤의 언어 : 황폐한 세계의 생존의식. 사랑 따위 들쑥날쑥 기분 따라 흘러가는 어린 시절.
붉은 학교 : 부모와 선생님을 사랑한 소년은 그 대가로 지옥을 맛보게 되는데... 공교육은 잘해야 트라우마라는 독설 같아 보이기도 함.
시간을 되돌린 소녀 : 시간씩이나 되돌려서 한짓이 결국은 남편감 찾기. 
화강암의 여인 : 등산과 사랑과 인생의 여자.


결국은 사랑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