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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객시대 - 10점
노정태 지음/반비


창비의 팟캐스트 라디오 책다방이 나쁜겁니다.

 

퇴근길. 이어폰에서는 책다방이 흘러나오고,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강남교보 쪽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목적지는 교보가 아니라 신논현역이였지만 이왕 근처이니 가볍게 책이나 구경하고 마음이었지요. 얼마나 안이한 생각이였는지.

 

월급날 D-5. 용돈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는데도, 배짱이였는지. 호기롭게도 귀에는 사라고 속삭속삭거리는 팟캐스트를 꽂 서점을 배회하고 있었습니다거의 끝날 무렵까지는 넘기고 있었지요. 정세랑작가는 좋아라 하지만 이번에 소설은 장르소설이 아닌 관계로 급하게 읽을 욕구가 일어나지는 않았더랬습니다. '다음달에 사면 되지 ' 정도의 생각을 하면 교보를 대충 돌아 별거 없네 때쯤. 책에 관한 소개를 듣다가 어느새 정신을 차리니 <논객시대> 검색하고 있었고, 비어 있는 용돈 계좌가 아닌 다른 계좌에 연결된 카드를 생각해 내고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자신을 발견 했으며, 아가씨에게 봉투는 필요 없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 그렇게 <논객시대> 손에 들어 왔습니다.

 

OTL

 

논객시대의 저자는 노정태입니다. 실패한 386들이 20 까기에 바쁘던 시절. 어쩌다 보니 20대를 대표하는 논객으로 불려 나온 청년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청년은 어느새 새파란 젊은이에서 그냥 파란 젊은이로 넘어가는 나이가 되었고, 그의 입장에서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를 '논객시대'라고 명명하며 앞에 있습니다.

우선, X부터 Y, N등등 수많은 세대가 지나 갔지만 뭔가 모호하던 때를 부를 편리한 이름 하나가 생겨서 반갑습니다. 그래요. 대학에 들어가면 당연히 세미나라는 과정을 통해서 모두 함께 세계를 의식하고, 바보 과대표가 될지 볼셰비키가 될지 결정해야 하던 운동권의 시대의 다음은 무슨 시대였는지? 운동권의 시대가 지나고 20대가 청춘들은 어떻게, 처음 세계를 의식했는지 궁금 했었는데, 논객이라는 단어가 수수께끼의 일부를 풀어준 느낌입니다. 90년대 후반 부터 20대의 일부는 레닌이 아니라 김일성도 아니라 논객을 따라 오거나, 논객에게 부딪히거나, 논객을 쫓거나, 논객과 대립하면서 살아 왔는가 봅니다.

 

책에는 9명의 논객들이 등장합니다. 작가는 책이 거칠게나마 서평이라더군요. 9명의 논객이 내놓은 책들을 기반으로 <논객시대> 썼기 때문이며, 거친 이유는 자신의 20대를 정리하며 30대를 모색하는 글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권 한권의 평보다는 책을 사람의 특징을 구성하는데, 책이라는 수단을 동원한 것이기 때문에 디테일하기 보다는 거칩니다. 생각을 보태 놓은 아래의 감상문 만큼 거칠기야 하겠습니까만(이건 출판할게 아니니깐 용서~)

 

먼저 첫번째 손님은 강준만입니다.

태초에 강준만이 있었고, 그가 만든 인물과 사상이라는 글터는 만든 사람의 의도를 넘어서는 여러가지 파장을 불러 왔지요. 정말로 많은 부분에서 강준만 교수의 의견에 동조했었단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그의 생산력에는 경의심을 가지고 있고요.

 

다음 진중권이로군요.

지금의 모두까기 인형을 기억하는 사람들 너머의 진중권은 참으로 놀라운 사람이였습니다. 전투력, 생산력, 그리고 강철 멘탈은 불가사의할 지경이였지요.

2012년의 진중권은 조금 이상한 존재였고, 어쩐지 답지 않았으며, 만큼 절박했지만, 결국은 졌다.라고 정리하고 넣어놓기에는 정말 아쉬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무슨 염치로 계속 닭잡고 소잡는 일에 그를 동원할 있겠습니까? 언제까지요? 시킨다고 사람도 아닌 같지만 계속 닭잡고 소잡는거 지켜보는 일도 도리가 아닌 같기는 합니다.

그와 그의 하늘에 평화가 깃들기를 빕니다.

 

다음 손님은 유시민.

지식소매상으로 위장한 정치도매상. 그러나 결국 부도난 도매상. 노무현의 정치적 이익을 가리키는 나침반이였던 유시민의 실패는 노무현의 실패를 나타내는 존재자입니다. 때는 정도면 괜찮다 싶었던 시절이 있었지요. 수평적 정권 교체는 이루어졌고, 조선일보는 제몫만 남았으며, 한나라당은 쪼그라 들었던 . 민주노동당이 10석의 원내 정당이 되었던, 이제 마음 놓고 내가족만 챙겨도 될것 같은 때요.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해답의 일부는 김선일씨의 두건을 쓰고 울부짖던 모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 하나 죽었다고 파병 철회하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 야멸차게 내뱉던 유시민의 모습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국익을 위해 사람 목숨을 희생시킬 있는 사람은 새누리당에도 쎄고 쎘는데 말이죠.

 

소련에서 왔지만 러시아로 돌아간 남자. 박노자가 네번째 손님입니다. 제가 가끔 한국사람이라는 것을 잊는 바로 그분 이신데요.

 

박노자는 싸이뿐 아니라 비틀스와 바그너도 같은 방식으로 비판할 있는 사람이며, 적어도 당분간은 이런 세계관을 갖고 살아갈 것이다. 고로 문제의 핵심은 박노자가 싸이를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아니라, 싸이의 '강남 스타일' 그렇게 이해하는 박노자를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냐가 아닐까? 라는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박노자는 현장에서 멀어져서 달라진게 아니라 오슬로에 있거나 서울에 있어도 마찬가지인겁니다.

 

다만 박노자는 훌륭한 국산렌즈라면서도 단호한 정치적, 역사적 목적을 향해 초점을 맞출수가 으며, 이유는 너무도 많은 것을 한꺼번에 배울 어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모일 수도 없다. 라는 의견에는 전적으로 동의 없었습니다. 원래 교수는 이것저것 성실하게 대답해주는 존재이며, 목표를 향해 초점을 맞추는 것은 본인몫이기 때문입니다. 크크

 

다섯번째 손님은 우석훈.

고장난 시계를 들고 뛰어다니는 토끼이자. 책사를 꿈꾸는 C 경제학자랍니다우석훈에 의해 세상에 불려나온 20 논객 출신이라 그런지. 우석훈에 대해서는 보다 상세한 애정(?) 느껴집니다. ^^

우석훈에 대해서는 이것 한가지는 덧붙여 놓고 싶습니다. 그는 자신의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에서 촉의 강유를 젤 마음에 들어한다고 했었읍니다. 그 이유는 제갈량도 유비도 오호장군도 없는 촉을 10년 넘게 지켜냈고, 강대국인 위를 상대로 끊임없이 전선을 구축한 사내이기 때문이랍니다. 보통 강유 피폐한 촉의 내정에는 관심 없이 무모한 북벌만 고집하던 과대망상증 환자로 평하죠. 어떤쪽의 평이 맞고 그르고 여기서 문제닙니다. 제가 주목하는 포인트는 우석훈은 책사를 꿈꾸고 있지만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책사는 제갈량이 아니라 이미 망한 나라를 지키며 전선을 꾸리는 책사이며 이는 구시대의 막내다운 정조입니다. 우리는 지는법이 없다면서 지는걸 전제하고 있다며 탓을 하는게 아니라 같이 눈물 한방울 흘릴 일입니다.

 

다음은 김규항.

필자는 김규항을 배운 건달이라고 칭하는데요. 하긴 그렇치라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건달 맞아요. 하는 일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뭔가에 반항하고 있는 같아 보이기는 하거든요.

 

 '건달' '아빠'라는 개의 페르소나를 손에 김규항은 한결 같았다. '건달' 자세로 엘리트와 평론가를 비판하고, 혹은 아들과 대화하면서 '상식', 혹은 '어린이의 ' 찾아내 비판의 근거로 삼았을 입니다.

 

3~40 남성, 특히 운동권 출신 남성의 죄의식은 건달이자 아빠인 김규항의 글이 먹혀드는 지점이랍니다. 그러나 자신이 염두에 두는 독자들 말고 다른 집단이 반응하기 시작하면, 그는 대체로 명징함을 잃어버리고 혼란에 졌다더군요.

 

무슨 문제든 계급의 문제를 지적하는 그를 '순혈의 기사'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뭐라고 그러든 그의 블로그에는 댓글을 없으며, 트위터는 몇번 끄적이다 접었습니다. 김규항은 자신이 발화하는 메시지가 의도 이상의 반응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싶어하지 않으며, 감당하지도 못하는 처럼 보입니다.

 

, 필자는 덧붙이지 않았지만 김규항이 발간하는 <고래가 그랬어>라는 어린이 잡지도 사실 타겟은 3~40 지식인 부모입니다. 어린이가 아니라 부모.

 

이제 3명의 논객이 남았군요.

남은 분의 이름은 김어준, 홍세화, 고종석입니다.

 

세계시민적 개인주의자이면서 음모론적 정치 선동가인 김어준에게는 지난 2012 너무 애썼고, 고맙다는 혹시 보게 된다면 전하고 싶고요. 그래도 졌으니, 이제는 흘러가는 꼴을 지켜보며 기대해 보는 밖에 없잖냐며 소주한잔 나누고 싶군요.

홍세화씨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어째선지 모두가 함께 이룬 성과는 항상 개인이 챙겨가더군요. 심노상회정찬이 떠난 자리. 아무도 원하지 않는 자리에 오른 용기를 배우고 싶습니다.

마지막 고종석. 지켜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