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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슐러 K. 르귄 여사의 글이 사랑스러운 이유는  '신중한 낙관주의'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장르작가들이 유토피아로 뛰어가거나 디스토피아를 향해 곤두박질 르귄 여사는 천천히 걷습니다.

 

평등, 박애, 자유.

 

그녀의 우주. 보통 헤인우주라 불리우는 그녀의 우주는 언제나 느리지만 명의 영웅이 아니라 여러 개인이 세상을 바꾸고, 음모가 아니라 열정이 세상을 움직입니다. 결코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일은 없죠. 결정적인 순간은 있지만요.

 

이번에 읽은 '용서로 가는 가지 '에는 4편의 단편이 실려있습니다. '배신', '용서의 ', '사람들의 남자', ' 여자의 해방' 서로 관계 없는듯 느슨하게 앞뒤로 연결되어 웨럴과 예이오웨이라는 쌍둥이 행성을 구성하고, 요스와 압바캄. 솔리와 테예이오. 합찌바와 라캄의 사랑으로 단단하게 이야기를 엮어갑니다.

 

결국 4편의 사랑 이야기면서 제목은 '용서'라고 지었는지를 생각하면서 르귄 여사의 글을 옮겨봅니다.

 

"당신이 당신 이야기를 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전체보다 작지 않다.

당신의 세계를 만드는 재료는, 당신의 국지적, 지성적, 이성적, 논리적 세계를 만드는 전체보다 작지 않다. 그리고 따라서 모든 선택은 임의적이다. 모든 지식은 부분적이다. 극미하게 부분적이다. 이성은 바다에 던져진 그물이다. 그물이 건져 올리는 진실은 전체 진실의 조각, 흘끗 광경, 순간 반짝인 섬광이다. 인간의 모든 지식은 국지적이다. 모든 , 모든 인간의 삶은 국지적이고, 임의적이고, 극미한 순간의 반짝임이다."

 

어렵지만 모든게 자기모순이고 신화였으며, 말이 되는 지식과 모두가 사실이고 이성적이며, 말이 안되는 지식 사이에 평화가 깃들기를…

 

 

 

 

 

 

 

용서로 가는 네 가지 길 - 10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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