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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즘만이 대접받는 문학이라면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없습니다.
끊임없는 고발만이 있을 뿐이겠죠.
그렇습니다.
'아작'이 내놓은 <혁명하는 여자들>은 리얼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고발보다도 아프게 고발하고, 어떤 대안보다도 자극적인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자신을 행성이라 생각한 여자_ 반다나 싱
여자는 정말 행성이 됩니다. 그 과정 내내 남편은 이웃들의 시선과 가족의 체면만을 걱정합니다. 배경은 인도입니다.
2. 늑대여자_ 수전 팰위크
여성 늑대인간이 남자 사람과 결혼합니다. 늑대의 1년은 사람의 7년이고, 남자보다 어렸던 여자는 순식간에 남자보다 나이가 많은 여자가 됩니다. 더 현명해진 것과는 상관없이 그녀는 버림받죠. 절묘하고 불편합니다.
3. 그들이 돌아온다 해도_ 조안나 러스
200년 전에, 그러니까 30세대 전에 모든 남성이 죽고 여성들만이 살아남은 고립된 행성에 남자들이 찾아옵니다.
그들은 오자마자 '난자 융합기술'을 단성 생식이라 부르고, 여자를 배려하고 어린아이를 무시하죠. 입으로는 지구에 성 평등이 다시 확립되었답니다. 기가 찰 노릇입니다.
4. 애들_캐롤 엠쉬윌러
남자들은 전쟁과 섹스를 하고, 여자들은 먹이고, 키운다.
적대적인 두 마을과 여자들이 거주하는 배후지를 배경으로 극단으로 치달은 성 역할을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작은 균열이 생기지만 진짜 작습니다. 바뀔 수 있을까요?
5. 중간관리자를 위한 안정화 전략_에일린 건
마거릿은 참을성 있는 사람이었고, 인간이 가진 가능성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수월하게 알아보았으며 지금보다 섹스와 텔레비전에 관심이 더 컸었습니다.
지금 마거릿은 관리자가 되고 싶어 하고, 같이 점심 먹기에 불쾌한 인간입니다.
모기였던 마거릿은 암컷 사마귀가 되는군요.
말 그대로 사마귀가 됩니다. 회사에서 권장하는 생물공학 프로그램을 신청했거든요.
6. 숙모들_카린 티드베크
이상한 소설입니다.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세계 한구석을 잘라낸 것 같은 이미지. 전승은 끊기고, 순결은 사라졌습니다. 아쉬울 것 없는데 아쉽습니다.
이미지는 강렬하고, 스토리는 단순하고, 빨간 딸기꿀에 빠진 느낌입니다.
7. 그리고 살로메는 춤을 추었다_켈리 에스크리지
젠더 구분을 좀 더 가볍게 넘나들기 위해 극장이라는 공간을 활용하고 있지만, 그냥 그대로 스트레이트를 던져도 스트라이크가 될 듯합니다.
세례자 요한이 여성이었다면 무엇을 얼마나 바꿔야 할까요?
연출가와 배우의 권력관계와 성적 줄다리기의 방향을 뒤집어 놓은 것도 좋지만, 여자 세례자의 아이디어가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소설입니다.
8. 완벽한 유부녀_앙헬리카 고로디스체르
아르헨티나의 특징일까요? 특징 맞는 것 같습니다. 마술적 리얼리즘.
가끔 문을 열면 다른 방이고, 다른 세상이 있습니다. 완벽한 유부녀이자 완성된 가정 노예인 주인공은 그 문을 통해 다른 세계를 구경하고, 다른 남자들을 죽여 왔습니다. 평생.
문득, 이 이야기는 실화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정치적 억압이 마술과 리얼리즘을 합쳤다면 젠더 억압이 마술적 리얼리즘과 결합 못 할 이유가 없고,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충분히 '실화'입니다.
9. 식물의 잠_안네 리히테
그녀는 나무가 되기로 했고, 나무가 됩니다.
약혼자는 그녀를 그의 정원 잔디밭 한가운데 심습니다.
오해는 마시길. 착한 남자입니다. 무해하고요. 심지어는 도움이 되는 남자입니다. 다만 그녀가 식물이 되기로 선택했고, 그렇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10. 가슴 이야기_히로미 고토
가장 젊다고 느껴지는 소설입니다. 수유의 고통과 양육의 분담 문제이고, 마술적으로 해결합니다. 형광 빨간색의 일본 애니메이션 피 색깔이 느껴집니다. 일본계 캐나다인이라는데 일본인 느낌입니다. 제 편견일까요?
11. 무척추동물의 사랑과 성_팻 머피
인간의 시대가 끝나고 금속 동물의 세계가 열립니다. 새롭게 열린 금속 동물의 세계는 주인공이 만든 로봇들의 세계인데, 와~ 아무리 단편이지만 이렇게 뚝딱 재생산이 가능한 로봇을 만들 수 있나? 라는 의심부터 듭니다. 사실 방사선 피폭으로 죽어가면서 남은 부품으로 그런 로봇을 만든다는 게 환상이죠. 그럼 혹시 새로운 금속생물로 가득 찰 지구의 미래는 죽어가는 주인공의 환상이었을 까요?
아무튼, 디스토피아 관련 단편 모음에서 읽었던 소설 같은데, 언제였는지는 기억이 안납니다.
12. 정복하지 않는 사람들_어슐러 K. 르 귄
여사님 등장입니다.
아문센보다 남극점에 먼저 도달했던 여자들 이야기입니다. 그녀들은 남극점에 아무것도 남기고 오지 않았습니다. 정복하러 간 것이 아니니까요.
13. 시공간을 보는 열세 가지 방법_캐서린 M. 밸런트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입자/반입자 쌍이 있어라."하니 빛이 있었답니다. 유대의 신화뿐 아니라 다른 민족의 각종 신화까지 양자역학과 버무려 창세기를 짓고, 다른 한 축으로는 SF 작가 되는 여자의 이야기를 세워 두었습니다.
헤임달이 백색왜성이로군요.
우리의 삶을 파괴하는 것은 엔트로피이고, 태어나게 하는 것은 신화입니다.
14. 공포_파멜라 사전트
아기의 성별을 선택할 수 있고, 남자로 태어나는 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면 그 답은 '공포'입니다.
남자는 넘치지만, 여자는 숫자가 극단적으로 적다면 이런 불균형은 배분의 불평등 문제뿐만이 아니라 극단적인 가부장 사회를 만들 것이며 폭력은 숨 쉬는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허파를 공포로 채울 것입니다.
주인공 조는 여성이고, 자유롭습니다. 그녀의 아버지가 남겨준 가짜 이름과 신분증으로 남자인 척하며 살고 있죠. 한 남자의 선물인 작은 자유를 애지중지하며 집이자 감옥에 앉아 그녀와 같은 사람들에게 주어졌던 자유는 언제나 그런 것이었고, 과연 다른 가능성이 있었는지 의아해하면서.
15. 바닷가 집_엘리자베스 보나뷔르
블레이드 러너입니다.
인공물은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자… 막삽니다. 막 용병 같은 거 하면서 막사는 거죠. 그러다 자신을 만든 창조자를 찾아갑니다. 얼마나 살지 왜 나를 만들었는지 알려고요. 그런데 블레이드 러너와 다른 점은 창조주가 여자였습니다.
그러니까 누가 만들었든 사람은 만들어지는 것이고, 넌 네가 만들었으니 내가 엄마고, 그동안 없어져서 엄청 걱정했지만 이렇게 나타났으니 다행이며 아기는 빨리 가지랍니다. 헐~ 그동안 시도도 안 해 봤느냐며 핀잔을 주는데 멍~ 하니 읽으면서 참, 엄마다.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 엄마. 하하하라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래요. 블레이드 러너의 모든 사단은 남자가 자연의 법칙을 거슬렀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지배까지 하려 했지요. 바닷가 집에 사는 인간형 인공물의 엄마 타이코 오로가츠는 키워주기는 했지만 지배하려 들지는 않는군요. 어쩜 꽤 좋은 엄마인지 모르겠습니다.
혁명하는 여자들 - 조안나 러스 외 지음, 신해경 옮김/아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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