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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외할머니는 고은분이셨다.
언제나 하얀피부에 어딘가 인형 같은 분위기가 드라마나 소설 속에서 접하는 할머니의 이미지와는 동떨어진, 아니 시대와는 조금쯤 비껴 앉은 그런 분이셨다. 속내야 열혈 여장부에 집안을 일으킨 기둥의 주춧돌이셨지만(기둥은 관습적으로 외할아버지가 맡고계셨다) 언제나 '처마' 같은 그런분이셨더랬다.
그러나, 그런 외할머니도 병원이라는 상자안에 갇히자 그냥 그렇게 고깃덩이로 변하고 말았다.
각종 호스와 기계장치에 둘러쌓여 평소의 고은 모습은 간데없고 그냥 그저 숨만 쉬던 멍한 얼굴의 외할머니.

성공률 10%도 안되는 수술에 병원비는 내가 책임질테니 어머니를 이렇게 보내드릴 수는 없다는 막내 외삼촌의 말에 몰래 안도의 숨을 삼키던 '효도의료'의 현장 풍경.

그 기억들이 이 책을 선택하게 했다.


오랜 세월 기자로 생활한 저자의 글쓰기는 특유의 냄새가 난다.
전문자료가 충실하게 소개된 것도 아니고, 인터뷰도 취사선택.
그러나 그 취지만은 백분 공감한다.

책의 분량을 채우다보니 좀 중언부언하는 경향도 있지만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름이 없다고 느끼는 내용인지라 나름 술술 넘어간다. '마지막 강의' 류의 멋진 죽음에 감동하기에 앞서 그런 죽음을 위한 조건을 만드는 일에도 노력해야 할 때라는 현실이 채근, 채근.

죽는 것도 복이라더니 자연사할 방법과 준비를 나부터 해야할 참이다.



포스팅하고 보니 세계일보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떴다.
<13세 백혈병 소녀 "명예롭게 죽을 권리를 주세요"> (2008.11.11)
인간답게 죽을 권리와 환자 진료의 도덕적 의무 사이에는 언제나 말 못할 긴장감이 존재한다.
결국은 자신의 의사가 얼마나 명확한가의 문제와 담당의사가 질지도 모르는 법적인 문제에대한 깨끗한 해결책이다.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문서화된)대비는 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