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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과 동양평화론

imuky 2009. 11. 2. 13:51
안중근 의거 100주년을 맞이하여 여러가지 기획이 있었던(혹은 진행중인) 한해였습니다.

올해의 성과라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독립투사에 머물던 안중근을 동양평화론을 주창한 사상가로써도 조명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겠죠.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그간 이쪽 분야에는 무심했던 것이 사실이니 뒤 늦게나마 다행한 일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동양평화론이 그냥 제목만 떠돌뿐 그게 뭔지? 어떤 한계가 있는지? 정말 말그대로 평화를 위한 담론인지? 에 대해서는 진지한 논의가 없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대중문화 속의 안중근도 중요하지만 이왕에 사상가로써 조명할 것이라면 좀 더 진지한 학술적인 성과물이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래서 살짝 알아봤습니다.

「동양평화론」의 원문 및 번역은 윤병석 역편으로 『안중근전기전집』(국가보훈처, 1999)에 실려있고요.
이에 대한 연구는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최기영(『한국근대계몽사상연구』, 일조각,2003)이 있습니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에 대한 한계에 대한 오래된 연구로는 1988년 『한국사 연구』(제61~62집)에 서강대 이광린 교수가 발표한 「개화기 한국인의 아시아 연대론」이 있습니다. 이 논문은 쫌 불편한 진실을 담고 있는데요. 한국 민족주의의 상징인 안중근마저도 '백인 지배'로부터 '동양 인종'을 지켜야 할 필요성(아시아주의)을 진지하게 신봉했으며, 일본이 식민화 , 침략 정책을 수정한다는 전제가 있을 경우 이 목적을 위한 한일동맹을 기꺼이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교수의 결론은 순박한 한국의 지식인이 일본의 팽창주의에 속았기 때문이라지만 아무튼 의외입니다.

아마도 속았다기 보다는 백인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서는 당시에 쫌 빠른 근대화 성과를 보이던 일본을 중심으로 한, 중이 연합하는 형태가 현실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결국 역사는 러일전쟁 당시 "백인 약탈자에 대항하는 황인종의 수호자" 로써의 일본을 지지하던 안중근이 한국을 궁극적으로 병합하고자 하는 일본의 시도를 깨닫고, 일본의 이런 배신을 응징하기 위해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안중근은 이상적인 '인종적 단결'보다는 현실적인 '국권'을 더 중시하셨던 거죠. ^^

전공자가 아닌 관계로 결론은 작게 :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사회진화론적 아시아주의에 입각한 평화론이였다.
백인 제국주의에 맞서서 한, 중, 일의 연수를 생각했으며 현실적인 선택으로 일본이 수장이 되는 것도 고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의 침략 야욕이 노골화되자 인종적 단결보다는 국권의 수호를 위해 동양평화의 배신자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기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