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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READ 라캉 - 8점
슬라보예 지젝 지음, 박정수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으악~ 내가 뭔짓을 한거야!!!!"

한번도 제대로 이해는 커녕 읽어도 읽어도 그냥 그런 사람이 있었지 정도의 기억 밖에는 안 남는 라캉에 슬라보예 지젝이라니, 이건 업친데 겹친 형국입니다.
이젠 실생활에 그다지 도움이 안되는(전 학자가 아닙니다) 책은 좀 피하고 살자라고 결심(?)한지도 한참인데 눈에 뭐가 씌었는지 덜커덩 집어들고 말았던 거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거인의 어깨위에서 바라보기가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다시 한번 느낀 책이죠. 슬라보예 지젝의 어깨는 그만큼 높고 맑은 시야를 제공합니다. 뭐 그렇다고 해서 마냥 쉽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그간 번역되거나 정리된 어떤 책보다 라캉에 입문하기 위해서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이제 부터 갈길이 멀다라는 생각은 들지만 더 가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이 책은 총 7장에 걸쳐 라캉의 개념들이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지를 시범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라캉의 개념을 이해 가능할 뿐 아니라 활용 가능한 것으로 제시합니다. 

■ 목차 ■

저자 서문:우리 뇌를 씻어내자

1.알맹이가 없는 텅 빈 제스처 : 라캉, CIA 음모와 대결하다
2.진짜와 가짜 : 라캉, 마니차를 돌리다
3.환상의 주문에서 깨어나기 : <아이즈 와이드 셧>과 함께 라캉을
4.실재의 수수께끼 : <에일리언> 관객으로서의 라캉
5.초자아적 명령 "즐겨라!" : <카사블랑카> 관객으로서의 라캉
6.신은 죽었다. 하지만 신은 그걸 모른다 : 라캉, <보보크>와 놀다
7.진실에 대한 무조건적 집착 : 라캉, 테러리스트의 편지를 읽다


라캉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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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은 "진실은 허구의 구조를 지닌다" 라고 말했답니다.
내가 쓴 가면(가짜 인격)을 통해 형성된 감정이 어떤 의미에서는 실제로 내가 느낀 것보다 더 진실할 수 있다는 얘기랍니다. 선(善)에 대해 설교하는 타락한 신부들은 위선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의 말에 교회의 권위를 부여할 때,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선한 행동을 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랍니다.
결국 자기가 본 것만을 믿는 사람은 핵심을 놓치기 쉽고, 오직 진실만을 바라보려고 하는 사람은 상징적 허구의 실효성을 간과한 대가로 핵심을 놓치게 된다는거죠. "속지 않는 자가 속는다"라나요.

상징적 허구의 실효성이라...

어쩌면 좌파는 상징적 허구의 실효성을 대중이 진실을 알게 되면 언제라도 깨부술수 있는 어떤 것(예를 들어 저 신부는 타락한 위선자라는 것을 대중이 알게 된다면)이라는 식으로 너무 가볍게 생각하기 때문에 현실에서 승리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권위를 파괴하기 위해 또 다른 권위의 가면을 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누가 뭐랄 수 없는 개인적인 원칙이겠지만 그것과는 상관 없이 세상은 상징적인 허구를 기반으로 돌아가고, 우리가 근본적으로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위선은 승리의 방정식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이거 은근히 절망적이로군요. 인간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