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오늘의 SF 걸작선

오늘의 SF 걸작선 - 브루스 스털링 외 지음, 데이비드 G. 하트웰 외 엮음, 정혜정 외 옮김/황금가지

'뉴욕 리뷰 오브 사이언스 픽션'의 발행인이자 과학소설 전문 편집자인 데이비드 하트웰이 해마다 발표하는  Year's Best SF 의 2003년 판입니다. 총 23편의 SF단편이 실려있고, 우리나라에서는 2004년도에 출간 되었습니다.

각 단편들 대부분 충실한 완성도와 현대적이고 세련되 이야기 전개를 보입니다.
660여 페이지의 두꺼운 책이지만 비교적 최신 경향을 엿볼 수 있는 단편집이라 흥이롭습니다.

천국에서 In Paradise - 브루스 스털링
월리엄 깁슨과 함께 사이버펑크를 주도한 브루스 스털링의 작품입니다.
9.11이후의 미국을 풍자한 작품으로 국토안보라는 이유로 자행되는 무차별적인 사생활 침해와 아랍권 사람들에 대한 편견 속에서도 한눈에 반해버린 두 주인공은 모든 것을 버리더라도 사랑만을 추구합니다.
통화 중 자동으로 통역을 해주는 핀란드제(큭큭) 핸드폰이 무척 탐나는 단편입니다.
 
슬로 라이프 Slow Life - 마이클 스완익
1980년대부터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한 마이클 스완익은 공룡에서 시간여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재들을 능숙하게 다루어왔으며, 1998년부터 6년간 휴고상을 다섯 차례 수상한 기록을 갖고 있는 작가입니다.
슬로 라이프는 타이탄 탐사에 나선 탐험대가 어떻게 곤경에 쳐했으며 어떤 생명체를 만나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타이탄의 바다 밑에 거주하는 생명체는 이들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타인이라는 개념이 없었지만 정말 빠르게 배워갑니다.
정말로 빠르게...
탄탄한 과학적 토대와 흥미로운 외계생물. 그리고 성가신 인터넷 누리꾼들이 등장하는 단편입니다.

방랑자의 시 Knapsack Poems - 엘리노어 아너슨
이 작품에 등장하는 곡스햇은 델루스 우주에 거주하는 외계 종족으로서 각 개체는 남성, 여성, 중성이 함께 모여 통일된 구조 또는 집단 인격체입니다. 곡스햇은 이상하기 그지없는 종족이지만 아무리 많은 분신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하나입니다. 지구인에게 남성성과 여성성의 균형+중성적인 감각이 필요하듯 그들에게도 균형과 감각은 인격적인 성숙도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패미니스트의 문체가 아니라도 얼마나 훌륭하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지 잘 알 수 있는 작품입니다.
곡스햇의 세계는 지구의 중세와 비슷하며, 주인공은 음유시인 입니다(무려 각운을 발명합니다).
 
도라도에서 At Dorado - 제프리 A. 랜디스
제프리 A. 랜디스는 과학소설을 쓰는 과학자입니다. NASA 글렌 연구소에 속한 '태양전지 및 우주환경 영향 연구 지국'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물리학자죠.@.@
웜홀부근의 항구에서 못된남자를 사랑하게 된 술집 아가씨의 이야기입니다.
코시지평선 너머로 여행하는 우주선들은 공간뿐 아니라 시간도 여행합니다. 이미 난파하여 죽은 남편이 약간의 틈새를 뚫고 아내를 만나러 옵니다. 왜곡 된 역사가 뿌린 씨앗은 웜홀을 닫히게 할 수도 있고, 웜홀이 끊긴다면 그것은 영원한 고립(이 세계에서는 이곳과 마찬가지로 물리적으로 빛보다 빠른 여행은 불가능 합니다)을 뜻하는 것이기에 아내는 그저 남편과의 마지막 한순간을 말 없이 간직할 수 밖에 없습니다.
웜홀과 웜홀 사이의 시간차 계산은 어떤 방정식으로 이루어 졌는지도 모르고 알아도 능력 밖의 일입니다. 문과 출신 SF작가에게는 치명적인 설정을 자랑스럽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길~

실러캔스 Coelacanths - 로버트 리드
데이비드 하트웰에 따르면 놓치기 아까운 개념을 다루고 있다지만 안타깝게도 전 놓치고 말았습니다.
 
철새 이동 경로의 수정 Flight Correction - 켄 워턱
켄 워턱은 샌호세 주립대학의 물리학과 교수랍니다.
갈라파고스 제도에 세워진 궤도엘리베이터를 중심으로 생태학적 재난의 가능성을 공학적인 위험을 이용하여 경고합니다. 역시 사람들은 철새의 경로 수정보다는 위대한 건축물의 붕괴가능성에 더 민감합니다. 생채학자들이 아무리 떠들어도 마이동풍이더니만 궤도얼레베이터의 붕괴 가능성만 내비춰도 잽싸게 관심을 갖습니다. 덕분에 생태학적인 재난도 막을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길은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교수사회의 애증과 인맥이 문제 해결에 미치는 영향이 맛깔스럽게 버무려져 현실감을 더합니다.

구두 Shoes - 로버트 셰클리
참견쟁이 구두의 이야기입니다. 예전의 이야기들과 다른점은 마법이 아니라 인공지능이라는 것 뿐입니다.

다이아몬드 검사기 The Diamond Drill - 찰스 셰필드
다이아몬드 밀수꾼이 우주공항검색대를 무사히 통과합니다. 이유는 탄소12가 아니라 탄소14로 구성되어서 비중이 3.5가 아니라 4.1이기 때문입니다.

안사락 족의 계절 The Seasons of the Ansarac - 어슐러 K. 르귄
물수리처럼 행동하는 외계 종족을 인류학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우아한 작품입니다.
말이 필요 없는 거장의 손길이 넘실 거립니다.

A.E. 반보그트를 위한 몇 마디 친절한 말 (A Few Kind Words for A. E. Van Vogt - 리처드 체딕
알츠하이머병을 얻은 후 전미 과학소설 및 판타지 작가 협회의 '거장'상을 수상한 반보그트에 관한 시입니다.
반 보그트는 우주선 비글호의 그분 맞습니다. 알츠하이머병이라니 몰랐습니다.
미시마 유키오가 그를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고 했었다는 것도 새로 알았습니다.

후광 Halo - 찰스 스트로스
지독한 엄마의 손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이보그 소녀 앰버는 목성으로 달아납니다. 그러나 괜히 지독한 엄마라는 소리를 듣는게 아닌 소녀의 엄마는 목성까지도 딸의 인생을 통제하기 위해 손을 뻗어오지요. 결국 앰버는 소행성 위에 왕국을 짓고 스스로 독립합니다. 헐~
미국이 아니라 스코틀랜드 사람이여서 그런지 무슬림을 편견 없이 다루고 있습니다.

나는 그 빛을 보았다 I Saw the Light - 테리 비슨
먼 옛날 외계의 방문자들이 지성을 전했다는 증거가 달에서 발견됩니다.
접촉은 성공하지만 아서 C. 클라크의 '파수꾼'과는 달리 그들은 실망하고 떠납니다. 기술은 달에 올만큼 발전했지만 의지는 조금도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그들을 사랑하지만 그들은 인간이 동등해지기를 바랍니다. 마치 애완견에게 "너도 빨리 진화해서 나와 같이 동등하게 대화하며 살자~"라는 것 처럼.

미술관에서 보낸 어느 한가한 하루 A Slow Day at the Gallery - 앨릭스 M. 델라모니카
모네의 수련을 외계인에게 빼앗긴 지구인은 외계인의 미술관에 테러를 감행합니다.
그러나 파급효과는 믿을 수 없고, 무고한 쳅스라족 젊은이는 목숨은 잃습니다.
진심과 예의는 커뮤니케이션에 필수적이기는 하지만 충분하지는 않더군요.

에일로라 Ailoura - 폴 디 필리포
장화신은 고양이를 토대로한 단편입니다. 최첨단 회춘치료를 받던 아버지를 살해하고 막내아들의 상속 재산을 빼앗은 가족의 음모에 맞서 주인공은 고양이형 베스트엔트(유전자 조합 키메라)의 도움으로 통쾌하게 복수합니다.
알고보니 주인공은 그녀의 아들였다는군요.

모든 정령들의 이름들 The Names of All the Sprits - J.R. 던
인공지능 생명체가 인류를 위협하는 세상을 배경으로 우주광부들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솔직히 할일은 없습니다.

할머니 Grandma - 매럴 엠슈윌러
은유적인 요소가 풍부한 페미니즘 소설로서 초인을 향한 풍자와 페미니즘의 세대적인 변화를 다룬 우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할머니는 정의를 위해 괴상한 옷을 입고 하늘을 날아다녔지만 이제는 늙고 힘없는 노인일 뿐이고, 그녀의 손녀는 약하고 힘은 없지만 작은 생명의 소중함과 사소한 선행의 아름다움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초인의 노년은 그녀의 젊은시절보다는 평범하지만 모두 것은 흙으로 간다. 무덤으로 가는 것은 없다.는군요.

사막의 눈 Snow in the Desert - 닐 애셔
런서블이라는 물질전송장치가 우주 이곳저곳으로 사람들을 나르는 런서블 우주를 배경으로한 서부극풍의 스페이스 오페라입니다. 이런 구닥다리 이야기가 얼마나 열정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죠.
주인공 스노는 알비노이자 불사의 인간. 그의 유전암호를 얻고자 상금이 걸리고 사냥꾼이 모이지만 차례로 물리쳐 버립니다.
덤으로 T-X를 연상시키는 여자친구를 얻게 되는 것은 팁같은 것이라고 쳐줍시다.

단일체 Singleton - 그렉 이건
'쿼런틴'의 그렉 이건. 현존하는 최고의 현대SF작가라는 그의 단편입니다.
여전히 양자역학의 세계에서 선택과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인간의 잣대에 대해서 다루는 철학적인 이야기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어느 과학자 부부가 인공지능 아이를 입양하는데 그 아이의 특별한 점은 다세계의 해석에서 보호 받는 두뇌. 즉 모든 차원에 걸쳐 단일체인 쿼스프(quantum singleton processor) 두뇌를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왠지 장대한 이야기의 설정부분 같은 단편이지만 아다이(Autonomously Developing Aritifcal Intelligences, 자율 발달형 인공지능)와 양자두뇌는 '아톰'을 연상시켰습니다. 물론 아톰과는 아주 다른 이야기이고, 관점도 관심도 다르지만 상황은 리얼하고 걸쳐진 문제는 좀 더 복잡합니다. 자율 발달형 인공두뇌의 사춘기는 무섭더군요. 딸가진 부모라면 절대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건을 겪게 됩니다.
 
게로포드 Geropods - 로버트 오노파
가까운 미래에 일군의 늙은이들이 각자의 단점을 보완할 사람들을 모으고(예를 들어 난청+장님+걸을 수 있는 사람과 콩팥이 멀쩡한 뇌사자) 정신적, 신체적 능력(만)을 결합함으로써 유능한 개인 한사람을 구성합니다.
게로포드는 법적으로 한 개인이지만 구성은 집단인 단일군체로써 구성체 중 한사람인 늙은 캐플런의 못난 사위를 응징하는데,
뭔 코미디인지...

내세 Afterlife - 잭 윌리엄스
고립되어 원시적으로 사는 외딴 행성의 지구인 공동체에 마이크로로봇으로 불사를 이룬 자가 불시착하여 죽었다가 살아나는 기적을 보여줍니다. 당연히 그는 새로운 종교의 지도자가 되지만 결국 지구연합경찰의 손에 죽고, 행성의 젊은이는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기회를 얻죠. 원시적인 삶은 원시적인 개척행성의 삶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데, 그러면 결국은 우주선을 탔다는 것 말고는 개척행성에 도착하는 순간. 도로 원시적인 로빈슨 크루소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니, 뭐가 이익인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화성의 수호자들 Shields of Mars - 진 울프
화성은 두번째로 버려졌고, 남은 사람들이라고는 거대한 환경유지장치 관리자 두명 뿐.
그들은 이 거대하고 황량하며 애잔한 황무지를 배경으로 칼싸움 놀이에 매진하고, 그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작가와 독자는 함께 행복해 집니다.
 
특허권의 침해 Patent Infringement - 낸시 크레스
자기 유전자가 약품개발에 쓰인 한 남자의 짧고 불유쾌한 이야기로서 메모와 편지라는 방식으로만 이야기가 진행되는 단편.
조너선J. 미즈씨는 자신의 유전자를 바탕으로 신약이 개발되자 유전정보 제공자로써 정당한 대가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거대 제약회사인 케글먼볼스턴은 자신들이 특허권을 가진 유전자정보를 허락없이 갖고 있었다는 이유로 6개월형에 쳐 넣죠. 진심으로 제길~입니다.

침묵하는 성채의 타락한 마녀 Lost Sorceress of the Silent Citadel - 마이클 무어콕
화성은 SF마니아의 영원한 고향이라도 되는것인지? 이 이야기도 화성입니다,
캡틴 존 맥샤드라는 천하무적 카우보이에게는 화성 고대의 신도 상대가 안돼죠.
여자 어린아이의 납치. 총잡이에게 의뢰. 고난. 해결. 그리고 고독하게 떠나는 카우보이의 이야기는 과장된 문체 속에서 어떤 사람에게는 역겨움을 어떤 사람에게는 잠시의 재미를 줍니다다. 참고로 전 전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