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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O GHIBLI INC.


언제부터인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 아닌 지브리의 작품에는 후계자 문제가 따라 붙습니다. 하긴 미야자키 감독님의 연세를 생각한다면 당연한 얘기겠지요.

<귀를 귀울이면>의 곤도 요시후미의 요절 이후 끊임없이 사람들은 포스트 미야지키를 기다려 왔습니다. 하지만 2002년 <고양이의 보은>을 연출한 모리타 히로유키는 지브리를 떠났고, 2006년에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을 연출한 미야지키 감독님의 아들. 미야자키 고로는 언급하기도 민망하게됐죠.

덕분에 이번에 <마루 밑 아리에티>를 연출한 요네바야시 히로마사는 본인이 싫어하든 좋아하든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거대한 대중문화 아이콘의 후계자로 거론될 수 밖에 없는 조건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스튜디오 지브리를 한번 돌아보죠.

전 스탭이 정사원에 매년 정기채용을 실시하고, 보통 외주를 주게 마련인 미술과 촬영도 자체 내에서 해결 가능. 2010년부터는 도요타자동차의 후원으로 ‘니시(西)지브리’도 운영하여 정기채용과 별도로 애니메이터를 뽑아 일정기간 연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브리의 복지후생 제도는 일본의 어느 기업보다 잘 갖춰져 있는 걸로도 유명하죠, 어쩌면 미야자키 하야오는 후계자 찾기보다 스튜디오 지브리 만들기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리고 그 증거가 이번에 발표한 <마루 밑 아리에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연출자의 개성보다는 지브리라는 이름의 스튜디오의 역량이 더 두드러진 작품.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개인의 세계관을 지브리라는 애니메이터 집단이 계승 유지하는 구조의 완성이라고 할까요.

지브리 박물관을 연상시키는 아리에타의 집. 손으로 꼼꼼히 그린 아름다운 배경. 그리고 '어떤 고난이 있어도 살아라!'라는 메시지까지 굳이 미야지키 하야오가 아니어도 너무나 미야자키 하야오스러운 세계가 스크린에 펼쳐졌을 때. 전 "아~ 앞으로도 쭈욱 스튜디오 지브리는 이런 작품을 만들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2006년에 난데없이 아들을 연출자로 데뷔시킨 것이 일본인 특유의 가족승계 원칙 때문이 아니라 스튜디오 지브리라는 시스템에 대한 믿음 때문에 저지른 뻘짓이였구나. 라는 생각도 했고요.

아무튼 2006년에는 실패한 일이 2010년에는 성공한 것 처럼 보이는게 사실입니다.
20년은 되어보이는 왼쪽 핸들의 수입차와 낡지만 넓은 정원으로  인간 소년 쇼우의 가정환경을 은근히 내비치는 방식이나 찻주전자와 아리에타의 눈에서 나오자 마자 표면장력 효과로 동그란 구슬처럼 변하는 물표현, 서양풍의 저택이지만 내부는 일본적인 생활 공간을 담은 집. 나무와 풀, 담쟁이 덩굴, 작은 벌레, 꽃들의 표현 등등. <마루 밑 아리에타>의 세계는 익숙하지만 지금은 없는 세계를 보여주는 미야자키의 판타지 그대로 였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빠진게 있었습니다.

바로 이분이죠.

STUDIO GHIBLI INC.


기존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에서는 하층계급이나 사회적인 약자들이 비록 가난한 노동자나 뱃사람, 기술자, 심지어는 하늘의 범죄자라도 유쾌하고 밝은 구석들이 있었습니다. 그의 전작들이 극적인 죽음이나 죽음으로 무언가를 이루는 일이 없는 대신 삶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 내듯이 주인공이외의 사람들. 정말 말 그대로 사람들에게서는 긍정적인 요소들을 한가지씩이라도 배려하는 인간적인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등장하는 이 아주머니는 처음부터 함부로 주차해 놓는 버릇부터 시작해서 무례하고 이기적이며 작은 이익과 칭찬을 위해 아부하고 자신과 같은 더부살이 약자에게 잔인한 모습을 보입니다.
한마디로 하층민의 단점으로 똘똘 뭉친 모습입니다.

이런!!!

미야자키의 시야는 확보했는데 시각은 잊어버린 모양입니다.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요?

혹시 미야자키 사후에는 그의 그림체는 다시 볼 수 있어도 그의 유쾌한 기타등등 여러분들은 볼 수 없게 되는 것일까요.
아리에티와 쇼우의 뜬금없는 인간과 환경에 관련된 대사 몇마디로 미야자키의 메시지는 충족되는 것일까요.
만약 그렇가면 생각보다 결과는 빨리. 그리고 끔찍하게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양성은 부족한 단일 생식체. 스튜디오 지브리라니...
자기 복제를 통해 사그러져가는 지브리를 지켜보게 된다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팬으로써 무척 슬플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아니 어쩌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터라도 꽤나 아픈 과정을 지켜봐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드는 군요.

디즈니가 아직도 살아 남아 있는 이유가 그의 시스템이 완벽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시스템이 무너졌기 때문임을 기억하면서 스튜디오 지부리의 건승을 빌어 봅니다.
뭐 내가 빈다고 해서 될일은 아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