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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과거사 청산 - 안병직 외 10인 지음/푸른역사 |
과거사 청산이라는 말은 참 이상한 말입니다.
청산이란 본래 '서로 간에 채무, 채권 관계를 셈하여 깨끗이 해결'하는 뜻이요. 과거사라는 말이 붙으면 '과거의 부정적 요소를 깨끗이 씻어 버림'이라는 의미인데, 역사라는 것이 현재에서 청산한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집단의 기억이란 것이 깨끗이 씻어 낼 수 있는 물건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청산이라는 말보다는 과거사 규명이나 과거사 성찰이 좀 더 옳은 표현이 아닐까 합니다.
사실 청산이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뉘앙스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과거의 전면적인 부정으로 들리기 때문에 불필요한 반발도 있을 수 있겠고요. 피해자쪽 입장에서야 당연히 청산이겠지만 한 나라의 구성원이 어디 단순하게 양분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직접적인 가해자나 가해 책임자에게 징벌을 내리는 것이 도덕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맞는 일이라는 사실에는 충분히 동의하지만 나라마다, 시기마다 사정이 다르다 보니 원리원칙이 어느 귀신이 씨나락 까먹는 소리가 되는 일이 한순간이라는게 쉽지 않은 선택을 강요하게 하는 것이겠죠.
안병직 선생 외 10인의 학자들이 독일, 프랑스, 남아공, 아르헨티나, 칠레, 스페인, 러시아의 과거규명과 성찰 과정을 소개한 '세계의 과거사 청산'과정 역시 순탄하거나 최선의 방법이 따로 존재했던 것은 아닙니다.
각 나라마다 사정이 있었고, 또 과제도 남아있습니다.
먼저 독일의 경우는 강요된 청산에서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새로이 등장하는 이슈들을 차근차근 해결해 나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였고, 프랑스의 경우에는 역쉬 프랑스!!! 훅! 하고 달아 올라서 초법적인 청산과정도 경험하고, 사법적인 청산도 시행하고, 남의 나라(여기서는 알제리)에 엄청난 피해도 주고, 역으로 사회/문화적으로 성찰도 하면서. 아무튼 다사다난합니다.
아르헨티나와 칠레, 러시아는 우리나라만큼이나 많은 문제를 안고 온탕과 냉탕을 왔다 갔다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였던 것은 남아공과 스페인인데, 진실을 밝히는 자에게 사면을 해준 남아공의 진실과 화해위원회의 활동과 모든 것을 잊고 묻어버린 망각협정의 스페인은 참 많은 생각과 선택을 던져줍니다.
우리도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라는 아픈 과거사를 가지고 있는 마당에 영 남의 일도 아니다 보니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되나봅니다. 아직도 가해자가 살아있고, 가해에 동조하거나 방조한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국민 모두의 문제로 묻혀있는 우리의 과거사는 어떻게 규명하고, 성찰해야 할까요?
사회적인 합의라는 것은 어떤 절차로 어떤 선택을 하게 만들까요?
과거청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과거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이며, 과거청산은 본질적으로 기억 만들기이자 기억을 다루는 정치라고 할 때. 균형 감각을 잃은 독선, 선악의 이분법적인 시각 등이 과거청산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다만 과거사의 진상을 밝히고 적절히 보상하는 방법을 찾아서 지난 과오를 철저히 비판한 뒤에 화해하고 관용했으면 하는 것이 바람입니다.
누구를 용서할지도 모르는데 무조건 용서하고 화해하라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럼 의미에서 일제강점기의 일상사 연구가 좀 더 진행되고, 전두환 전대통령 일가의 추징금이 확실하게 걷히고, 적어도 누군가가 희생양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역사로써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하루 빨리 왔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일제 강점기 시절이나 군부독재시절의 진상을 소상히 증언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사면을 해주는 것도 한 방편이 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물론 제가 늦게 태어났다는 행운과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현실 때문에 이런 소리를 할 수 있는 것이며 아직도 고통을 받고 있는 많은 피해자분들의 입장에서는 괴로운 선택이 될 수 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사회적 합의는 피해자의 침묵 위에서가 아니라 피해자의 입장이 충분히 고려된 합의여야 하기 때문에 주제 넘는 의견은 이쯤에서 접고 기억하고 기억하고 기억해서 다시는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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