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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명예의 전당 : 전설의 밤 - 8점
아이작 아시모프 외 지음, 로버트 실버버그 엮음, 박병곤 외 옮김/오멜라스(웅진)

이 작품집의 제목이 왜 명예의 전당인지 부터 설명해야 겠군요.

SF소설계에 네뷸러라는 상이 하나 있습니다. 미국과학소설작가협회에서 수여하는 것으로 미국에서 작품을 출판한 작가에게만 주는 제한적인 상입니다. 뭐 제한적이라고 얘기는 합니다마는 아카데미 시상식에 어디 그런거 따지고 본답니까? 게다가 영화와는 비교도 안되게 좁은 SF장르소설이라는 틀안에서 영어권작품의 비중은 가히 절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일단 네뷸러상의 권위는 인정하자는 얘기인데, 이 권위있는 네뷸러상이라는 것이 1966년부터 시상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럼 1965년 이전에 나온 작품은 어쩌지? 라는 의문이 드는데요.
그 의문의 답이 본 단편선입니다.

1964년 12월 31일 이전에 발표된 단편과 중단편 분야의 작품을 대상으로 미국과학소설작가협회의 회원들이 투표를 해서 뽑힌 작품을 몇 권 분량의 특별 작품집으로 낸것이 바로 이 책 'SF 명예의 전당'입니다.

상위 15편의 작품은 다음과 같습니다.

1. Nightfall, 아이작 아시모프
2. A Martian Odyssey, 스탠리 와인봄
3. Flowers for Algernon, 대니얼 키스
4. Microcosmic God, 테어도어 스터전/First Contact, 머레이 라인스터(동률)
5. A Rose for Ecclesiastes, 로저 젤라즈니
7. The Roads Must Roll, 로버트 하인라인/Mimsy Were the Borogoves, 루이스 패깃
    Coming Attraction, 프리츠 라이버/The Cold Equations, 톰 고드윈(동률)
11.The Nine Billion Names of God, 아서 클라크
12.Surface Tension, 제임스 블리시
13.The Weapon Shop, A.E. 밴 보그트/Twilight, 존 캠벨
15.Arena, 프레드릭 브라운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로군요.
사실 이 목록이라는 것이 약간 문제가 있는 것이 SF작가들에게 받은 목록이라는 겁니다.
대중적인 인기와는 상관 없이 매니아적이 취향이 강하게 들어간 목록이라는거죠.
그래서 작품집을 만들면서 편집자의 손길이 좀 들어갑니다.

우선 15위 안에 두 작품을 올린 유일한 작가인 아서 클라크의 작품 중 The star를 11위에 다른 작품이 뽑혔다는 이유로 제외합니다. 참고로 아서 클라크의 The star는 시공사에서 나온 '갈릴레오의 아이들'에 번역되어 실려 있습니다.

래이 브래드버리가 빠져 있는 것은 너무 의외라 꼼꼼히 서문을 읽어보니 20위권 안에  두 작품을 올려 놓았답니다. 아마도 표가 분산되어서 15위 권안에 들지 못한 듯 합니다. 그래서 작품집에는 포함이더군요. 덧붙여서 하인라인도 20위권안에 두 작품을 올렸습니다.

그 밖에도 이런저런 조정을 거쳐 SFWA(미국과학소설작가협회)가 최고로 뽑은 1965년 이전의 작품 15편에 30위까지의 작품 중 일부를 가지고 본 작품집을 출간하게 되었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권으로 나뉘어서 나왔는데 그 첫번째 권이 바로 지금 소개하고 있는 '전설의 밤'인거죠.

그럼 SF 명예의 전당 : 전설의 밤편을 살펴 보겠습니다,

어스름 Twilight - 존 캠벨
길가다 시간여행자를 태운 어떤 사람의 입을 빌어서 인류의 황혼을 이야기합니다.
호기심을 잃어버리고 목적도 의욕도 없이 그저 영원히 작동되는 기계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하긴 기계가 완벽하게 자가수리와 복제를 반복할 수 있다면 작동법이외에 원리와 제작법을 잃어버리는 일도 있을 수 있겠구나 싶기는 합니다. 뭐 그래도 기계는 작동하고 거의 자연적인 환경처럼 되어버린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겠지요.그래도 첫번째로 실어 놓은 이유는 SF의 황금시대를 연 존 캠벨에 대한 예의 차원아니였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전설의 밤 Nightfall - 아이작 아시모프
6개의 태양이 뜨는 어느 행성에 일식이 찾아 옵니다.
물론 자주 있는 일은 아닙니다. 2050년마다 있는 일이지요.
그리고 그들의 문명은 2050년을 주기로 파괴되었다가 살아 납니다.
그 이유가 걸작인게... 낮만 있는 행성이다보니 완전한 어둠에 세상이 가려지면 사람들이 공포로 돌아버린다는거죠. 한 조각의 빛을 위해 자신들의 문명에 불을 지를만큼이요. ^^)a
그러나 소설의 주인공들은 완전히 과학적인 방법으로 어둠을 예견하고 대비하며 기다립니다.
다음 세대에게 전할 과학적인 지식의 조각들을 준비하던 그들이 본 것은 완전한 어둠과 2050년만에 찾아 온 밤 하늘에 영롱하게 떠오르는 별들의 모습입니다. 꺄~

무기 상점 The Weapon Shop - A.E. 밴 보그트
비글호의 모험. 그리고 그 뿐의 밴 보그트의 작품입니다.
자유를 위해 투쟁할 수 있는 개인의 권리를 '총'으로 대변하는 것을 보면 말년에 작품의 질이 떨어지면서 캠벨 사단에서 가장 단명한 작가가 되어버린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투기장 Arena - 프레드릭 브라운
인류는 다른 외계 종족과의 전쟁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발견한 제3의 존재. 인류와 그 적을 초월하는 신비한 존재가 임의로 뽑은 인류 1명과 이종족 1명에게 투명한 경계를 두고 결투를 벌이도록합니다. 직접적인 육체 접촉 없이 용기와 의지로 싸워보라는 건데.
그 이유는 두 종족이 싸우면 둘다 멸절할 터이니 대표들끼리 맞짱 붙어서 이긴쪽만 살아 남도록 조치를 취하겠다는 겁니다.
헐~

아무튼 다행히, 혹은 당연히.
인류가 이깁니다.

신비롭지만 익숙한데 싶었더니 스타트랙의 한 에피소드로 쓰이기도 했다네요.

허들링 플레이스 Huddling Place - 클리포드 D. 시맥
젊어서는 화성에서 일하기도 했던 뇌 전문의 웹스터씨는 이제는 고향의 장원에서 편안한 여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화성인 옛친구의 수술을 위해 집을 떠나보려고 하지만 심리적으로 땅에 묶인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군요.
어찌 어찌 극복해 보려고 하지만 주인의 마음을 너무나 잘 대변해 주던 집사 로봇이 손님들을 돌려보내는 바람에 결국은 자신의 집을 떠나지 못합니다. 무슨 지박령도 아니고, 뭐 그렇게 됩니다.

최초의 접촉 Firt Contact - 머레이 라인스터
게 성운에서 인류는 다른 외계종족의 우주선을 만납니다.
서로 비슷한 과학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의사소통 방법도 다르고(외계인은 단파장으로소통합니다), 시각도 다릅니다. 하지만 지성이 있고, 유머도 있는데 신뢰는 할 수 없죠.
아무튼 서로간에 고향행성의 위치를 들킨다는 것은 우주전쟁이 일어난다면 일방적으로 당할 수 있는 조건이 되기 때문에 돌아서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먼저 공격하지도 못하는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겁니다.
그러나 해결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였죠.
서로의 우주선에서 위치정보를 지우고는 바꿔타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정말 엄청난 정보를 가지고 가지만 서로의 위치는 들키지 않고 신뢰를 쌓을 시간을 버는거죠.
왠지 그럴싸한 상황과 유머러스한 전개가 인상적입니다.
전쟁 아니면 경의로움 밖에는 없는 상식적인 첫 접촉이 아니라 각자의 종족의 미래를 우연히 떠 안게된 선장들의 고뇌가 안쓰러운 그런 단편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소산 Born of Man and Woman - 리처드 매디슨
시간여행자의 사랑, 나는 전설이다의 그 리처드 매드슨입니다.
환상특급의 작가로도 유명한데 이 단편이 딱 그것입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기형으로 태어난 아이가 지하실에 갇혀 살면서 학대받는 상황을 아이의 관점에서 바라 본 짧은 단편입니다. "만약 다시 날 때리려고 하면 엄마 아빠를 아프게 할 거다. 정말이다."라는 마지막 문장이 앞으로의 전개를 섬뜩하게 예고하는 것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데에 탁월한 능력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 같습니다.

커밍 어트랙션 Coming Attraction - 프리츠 라이버
여자들에게 가면이 유행이고, 방사능 오염이 만연하며, 여전히 미국과 소련이 전쟁 중인 어두운 미래의 어느 하루입니다.
하드보일드 풍의 분위기이지만 사건은 없고, 기묘하고 스물스물한 타락만이 남겨져 있는 것 같은 소설입니다.

작고 검은 가방 The Little Black Bag - 시릴 콘블루스
세상에는 멍청이들 뿐이고 그 멍청이들을 적당히 관리하는 엘리트들이 존재하는 미래에서 의사 노릇을 흉내내고 있던 멍청이가 과거로 왕진가방을 잃어버립니다. 그런데 그 왕진가방은 진짜라서 가벼운 질병정도는 고치는게 문제입니다.
당연히 그 가방을 주운 사람들은 정직한 의료행위와 돈벌이 사이에서 갈등하고 돈벌이 팀이 이기는듯 싶지만 결과는 권선징악입니다.

성 아퀸을 찾아서 The Quest for Saint Aquin - 앤소니 바우처
종교가 박해 받는 미래에 기적을 찾아서 떠난 신부의 이야기입니다.
썩지도 않는 성자의 시신이라고 찾아가보니 로봇이더군요.
문제는 가장 정교한 논리장치가 결국은 신에게 귀의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입니다.

표면장력 Surface Tension - 제임스 블리시
난파한 씨앗우주선이 뿌려 놓은 인간의 유전자를 물려 받은 수생생물의 모험을 그린 소설입니다.
끝없는 호기심과 용기를 지닌 이 후손들은 표면장력을 뚫고 다른 차원의 우주(수면 위가 되겠죠)를 건너 또 다른 세계(다른 웅덩이)로 여행합니다.
너무나도 작은 세계의 이야기입니다마는 그 의지는 너무나 장쾌해서 감동적입니다.
우주선이라고 해도 수생식물로 엮고, 균류의 운동에너지로 가까스로 동체를 밀고 이동하는 수준입니다만, 매순간이 경의롭고 신비합니다. 미시세계에 인류의 후손을 심고 그들에게 생명력을 불어 넣는 일은 과학소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며, 그 속에서도 인간을 잊지 않는 것은 문학만이 성취할 수 있는 일입니다.

90억 가지 신의 이름 The Nine Billion Names of God - 아서 클라크
컴퓨터가 90억가지의 신의 이름을 조합해 내는 순간 세상은 끝이 납니다.
인간의 힘이라면 1만 5000년을 걸렸을 이 일을 컴퓨터를 이용하여 100일만에 끝내버린 티벳승들의 마음은 도대체 어떤 것이였을지 궁금합니다.
'머리 위 하늘에서 하나 둘씩 별들이 사라져가고 있었다.'라는 간결하고 섬뜩한 문장으로 세상의 종말을 묘사한 것이 인상적 입니다. 그리고 보니 아이작의 전설의 밤에서 별을 발견한 일은 새로운 세상으로의 진입인데, 별이 사라지는 것은 종말이로군요.

차가운 방정식 The Cold Equations - 롬 고드윈
한 소녀가 긴급연락선에 밀항합니다.
단지 오빠를 만나보겠다는 순진한 생각으로 시도한 장난같은 밀항은 사실은 목숨을 내놓아야하는 일입니다.
1만큼의 연료에 1만큼의 질량이라는 차가운 방정식에는 어디에도 소녀에 대한 인정이나 동정심은 담겨있지 않았고, 소녀가 긴급연락선에 남아 있는 한 연락선 조종사와 소녀는 대기권 진입시에 사망. 긴급연락선에 실린 백신을 기다리던 개척민도 사망입니다. 결국 남은 길은 소녀가 에어록 너머로 나가는 것 뿐이죠. 아무도 그 소녀의 죽음을 바라지 않고, 죽을만한 일을 하지 않았지만 소녀는 죽어야만 합니다.
자전으로인한 통신범위 경계선에서 오빠와의 마지막 통신은 눈물겹습니다.
가족을 위해 힘들고 위험한 개척행성에서 일하며 송금하던 오빠. 그 오빠 덕분에 학업을 마치고 취업하러 가던 동생은 우연한 기회에 들은 오빠가 있는 행성으로 가는 긴급연락선의 목적지 때문에 충동적으로 저지른 밀항으로 영원히 헤어지게 됩니다.
대부분의 SF소설들이 의지와 용기, 그리고 과학과 기지로 기발하게 사건을 해결하는데 비해서 어쩔 수 없는 일에 어쩔 수 없이 희생당하는 사람에게 주목했다는 것이 신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