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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와 브루노 - 6점
루이스 캐럴 지음, 이화정 옮김, 해리 퍼니스 그림/페이퍼하우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그 루이스 캐롤의 다른 작품입니다.

앨리스 시리즈는 미국의 1951년 디즈니 뮤지컬 각색판과 1985년과 1999년 TV 시리즈. 그 외에도 24화로 구성된 일본 애니메이션 각색판, 아르헨티나 마임판. 2010년 팀버튼 각색판 등 수십 편의 각색판이 존재하는 진짜 유명한 작품이지요.
혹자는 이러한 각색판들을 재탄셍이 아니라 작품의 사망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뭐 그런 의견도 있을 수 있겠지요.
적어도 <실비와 브루노>처럼 철저히 외면 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럼 왜 <실비와 브루노>는 외면 받았을까요?

일단 앨리스 시리즈의 후속편을 기대하는 독자들을 외면하고 전혀 다른 작품을 내놓았다는 점을 들수 있겠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루이스 캐롤 자신이 문학의 본질은 독창성에 있으며 한번 지나간 길을 되새김질하는 것은 재난을 자초하는 일이라고 서문에 밝히고 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오히려 시리즈를 늘려가는게 더 나쁘지요)
작품만 재미있다면야 앨리스의 후속이건 아니건 이토록이나 외면 받지는 않았겠지요.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현실계에는 백작 영애를 사랑하는 아서와 그를 응원하는 화자가 있고, 환상계에는 아웃랜드의 총독의 자녀인 실비와 브루노가 있습니다. 두 세계는 넘나드는 화자를 통해 젊은이의 사랑과 아웃랜드의 권력암투가 독자에게 설명됩니다.
그리고 두 세계를 넘나드는 장치는 음향효과입니다. 예를 들어 현실계의 찬장문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환상계의 찬장문 삐걱거리는 소리로 이어지는 식입니다. 거울이나 토끼굴 같은 명확한 장치는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번역자는 현실계와 환상계를 넘나드는 장면마다 역주를 달아서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기도 합니다.

신조어, 줄임말 등의 언어유희가 심하고, 단어의 결합을 통한 의미의 변화를 번역하기에는 여러모로 난점이 있기 때문에 번역하시는 분은 무지 고생하셨을 듯합니다. 결국 <실비와 브루노>는 영어가 아니라면 그 의미가 반 이상 줄어드는 영문학 실험소설이라는 얘기입니다. 게다가 이 와중에 19세기 말의 사회, 종교, 과학, 철학, 문학 등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통찰이 상당히 직설적으로 녹아 있기 때문에 모호해서 해석의 여지가 넓었던 앨리스 시리즈와는 다른 면모를 보입니다.

개인적인 인상은 앨리스 시리즈가 모호하지만 비주얼적이였다면 <실비와 브루노>는 문학적입니다.
들뢰즈는 <실비와 브루노>를 걸작이라 칭하셨다지만 그건 그분의 사정이고, 그만한 학식과 문학적 연구의 필요성이 없는 일반 독자의 눈에는 한없이 부담스러울 따름입니다.

게다가 번역도 안되는 문학적 실험으로 가득찬 작품을 원문으로 읽을 재주를 갖추지 못한 저 같은 사람은 느닺없이 돌출되어 나오는 당대비평까지 참아가면서 읽어야 하니 그 부담감이 따블입니다. O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