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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유럽 - 8점
위르겐 하버마스 지음, 윤형식 옮김/나남출판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위르겐 하버마스의 <아, 유럽>은 그가 발표한 정치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짧은 글들을 모은 11번째 책입니다. 스승이나 동료학자를 추모하는 글이나 업적을 기리는 강연문, 그리고 국제학회에서 발표한 학술논문 등이 실려 있는 이 책이 정치저작집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유는 위르겐 하버마스의 삶과 이론 덕분이겠지요.

 

제1부 인물의 초상은

1. 초창기 연방공화국의 헤르만 헬러(볼프강 아벤트로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며)

2. 리처드 로티와 긴축의 충격에 대한 환희

3. "...그리고 미국을, 그것의 강건한 민주주의를 정의하는 것"(리처드 로티를 추모하며)

4. 윤리적 물음에 어떻게 답변해야 하는가(데리다와 종교)

5. 데리다의 명료화 효과(마지막 인사)

6. 로널드 드위킨-법학자들 세계에서의 독보적 존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일단 기본적인 교양의 수준이(만약 그것을 교양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상당히 높게 책정되어 있어서 읽는다고 해서 읽혀지는 글들은 아닙니다. 한마디로 (젠장) 어렵고, 헷갈리며, 졸리는 글입니다.

게다가 철학서적이나 사회과학 서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번역문의 난해함은 글 본래의 취지와는 상관 없이 이해는 커녕 기초적인 독해 역시 무진장하게 방해합니다.

특히나 독일어로 사고한 체계를 한국어로 옮겼을 때의 단어 하나 하나는 선택이 아니라 창조의 영역에 가깝습니다.

(차라리 한자병기를 해 주는게 더 유리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 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2번과 3번 글은 눈을 부라리고, 정신을 가다듬으며 읽어 볼만 합니다.

숭고한 철학적 개념들의 김을 빼어버린(긴축) 리처드 로티의 사상과 그에 대한  하버마스의 애정과 추모는 마치 지젝의 뿌리를 찾아낸 듯한 환희가 있습니다.(지젝도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건 아닙니다)

 

'철학보다 민주주의가 우선한다'

'이론보다 기술이 더 우선하다'

그리고

"우리가 정치적 자유를 돌보게 되면, 진리는 보너스로 얻게 됩니다"

 

제2부 아, 유럽은

7.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아채는 전위적 감지능력(지식인의 역할과 유럽문제)

8. 유럽과 이민자들

9. 막다른 골목에 처한 유럽정책(차등적 통합정책을 위한 호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실 유럽통합 문제는 제겐 너무 먼 문제입니다.

단순 호기심 이상을 넘어서기에는 물리적 거리도 심리적 거리도, 정치적 거리도 무척 멀리 떨어져 있지요.

 

그러나 하버마스가 지적한 여러 쟁점 중에서 이 것 하나만은 제 삶과도 직접 연결되어 있어서 반향이 컷습니다.

 

시장, 특히 세계적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철폐는 개별국가의 정부들의 개입여지를 제한하고 자기 나라의 성공적인 기업들의 조세자원에 대한 접근권을 박탈한다.

 

예를 들어 애플은 2011년 영국에서 60억 파운드(한화로 약 10조8347억원)를 벌었지만 낸 세금은 1600만달러(182억원)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이는 영국의 표준 세율에 훨씬 못미치는 액수로 세금을 매출대비로 따져보면 0.168%에 불과합니다.

 

이런 예는 더 있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삼성전자는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세율이 낮은 국외 자회사에 소득을 몰아주는 이전가격조작을 통하여 정상 세금 납부를 회피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자국의 기업은 성공하는데 세금은 부과할 수 없고, 이렇게 조세자원의 확보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것은 공공을 위한 제원의 확보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는 결과를 초래하겠지요. 게다가 구리왕,완구왕의 역외탈세에 대한 우리나라 국세청의 무기력함은 세금은 없는 놈들끼리 나눠낸다는 쇄골 분질러 먹을 소리가 현실이라는 암담함을 선사합니다.

 

결국 글로벌 기업의 통제와 조정을 위한 글로벌한 조직의 필요성을 불러 일으키는 군요.

오늘부로 전 세계정부주의자입니다.(그런게 있다면요)

 

제3부 공론장의 이성에 대하여는

10. 매체, 시장 그리고 소비자- 정치적 공론장의 지주로서의 정론지

11. 민주주의는 아직도 인식적 차원을 갖는가?(경험적 연구와 규범적 이론)라는 2편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국가가 고품질 언론이라는 공공재를 개별적으로 보호하는 것은 실천적 문제라는 하버마스의 의견에 쉽게 동의하기에는 아픈기억이 너무 많은 대한민국의 주민으로써 10번과 11번 글은 쪼오금 공허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론적으로야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입니다마는 어디 사는게 그런가요.

하버마스의 논의를 위한 전제조건들은 그 요구치가 상당히 높아서 불안합니다.(하버마스급들이 모여 사는 나라 이야기 같습니다)

뭐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공론장에 나와서도 근거와 논증을 내놓기 보다는 "이번 정책이 싫은 이유는 내가 싫어하기 때문이다"라는 소리를 당당하게 내놓는 나라에서 살다 보니 건전한 공론의 발전보다는 감정의 대립쪽이 더 현실로 보입니다. 현실적이 아닐라 현실로요!

 

존 로크로부터 연원하는 사회적 시민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자유주의적 전통도, 적극적인 공민의 민주적인 의사형성 참여를 바탕으로하는 공화주의적 전통도, 가장 합리적인 공론의 형성을 강조하는 토의적 전통도 갖지 못하고 어느날 갑자기 미국으로부터 선물 받은 민주주의를 체화하는데도 버거워하는 우리로써는 국민국가를 넘어서는 정치적 공론장으로의 이행은 너무 너무 먼 이야기 같습니다. 가기는 가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