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조선의 탐식가들

조선의 탐식가들 - 김정호 지음/따비

 

<조선의 탐식가들> 이 얼마나 매력적인 제목입니까? 고리타분하게만 느껴지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시도때도 없이 섬세한 맛과 호화로운 음식을 추구하며, 게걸스럽게 많이 먹는 사람들을 추적할 것만 같은 제목. 기기묘묘한 음식과 희안한 식재료를 찾아 온갖가지 요상한 행동을 일삼는 이야기를 기대하고 책을 펼친 것이 당연하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저자가 밝혔듯이 조선시대라는 것이 성리학을 기반으로한 사회이고, 글을 쓴다는 지식인들이 음식에 대한 탐욕을 꺼려하다보니 기록이 매우 적습니다. 결론은 조선 선비들의 음식 문화를 써 놓고 탐식가 이야기라고 우기는 상황이 되어 버렸지요.

생각보다 평범한 식단이랄지. 아무튼 그저 옛 어른들은 이런 음식을 즐겼구나라는 측면이 강합니다.

아마도 글쓴이 자신이 음식을 탐하지 않는 사람이구나...라는 감각입니다. 좋아하는 것을 쓸 때의 흥분 같은 것들이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평범한 일상사보다는 음식이라는 주제로 조선 선비 사회를 들여다 본다는 책의 취지는 충분히 훌룡하고 흥미롭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명백한 탐식가는 허균밖에 없습니다.

허균은 스스로도 평생 먹을 것을 탐한 사람이라고 고백할 정도로 음식을 좋아한 인물이라는데, 이 책을 통해 처음 안 사실은 허균하면 홍길동전이지만 도문대작이라는 책도 썼다는 사실입니다. 도문대작은 허균이 조선 팔도의 명물 토산품과 별미 음식을 소개한 책으로 책 제목은 '푸줏간 앞에서 입을 크게 벌려 고기 씹는 시늉을 해 본다'라는 뜻이라는군요.

이 책은 허균이 전라도 함열(전북 익산)로 귀양 갔을 때. 유배지의 거친 음식들에 질려서 예전에 먹었던 산해진미를 하나하나 반추하면서 써내려간 책이랍니다. 어쩐지 배고플 때 친구들과 모여서 예전에 먹었던 좋은 음식들에 대해 서로 자랑하듯이 이야기하던 모습과 겹쳐서 저절로 미소가 떠오릅니다. 하하

 

허균에 의하면 강릉의 방풍죽, 경기도 여주의 차수(칼국수), 서울 장의문 밖 사람들이 만든 두부, 삼척의 게 등이 맛있으며 별미로는 곰 발바닥 요리, 표범의 태아, 사슴의 혀, 사슴 꼬리 요리등이 있다고 합니다. 유배지를 정할 때도 방어와 준치 타령을 했다는 허균이고 보면 그를 주인공으로 조선의 식객 같은 영화가 만들어져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흥행은 보장 못하지만 말입니다. ^^a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다산 정약용이 손수 개를 잡아 보양했다는 이야기인데, 이는 흑산도 유배시절 형 약전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알 수 있답니다. 개 잡는 법부터 개 삶는 법까지 자세히 다룬 이 편지는 평소 채식을 즐기며 음식에도 여간 깐깐하지 않았던 다산의 인간적인 모습을 엿본 것 같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사실 정약용은 박제가에게 편지로 개고기 조리법을 배웠다는데 정작 그의 글에서는 개고기 관련 글을 찾을 수 없다고 하니 살짝 아쉽고요. 박제가하니 그의 스승인 연암 박지원이 음식에 관한 글을 남겼으면 과연 어떤 글이 되었을까 상상하게 됩니다. 

 

소심장을 구워 먹고, 농어회에 순채 요리를 먹으며 낙향해서 유유자적한 생활을 누리는 꿈을 꾸던 조상들. 오른손에 술잔, 왼손에는 게 집게발을 들고 행복해하던 조선의 선비들을 앞으로 사극에서도 만나 볼 수 있을까요?

하긴 누구 찍어내리기 바뿐 사극에서 밥상 고증하고 있을 수는 없겠죠. 아쉽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