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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2 - 10점
장정일 지음/마티

 

이 글은 독후감에 대한 독후감입니다.

 

ㅎㅎ 써 놓고 보니 포스트모던하군요.

 

1994년에 장정일의 독서일기가 처음 출간되었으니 어느새 20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빌린 책, 산책, 버린 책2>는 2011년 출간이니 또 다른 한권의 책이 나올때도 되었군요. 대단합니다.

 

일기라는 형식을 버린 후 장정일의 독서 시리즈는 '인용문으로 구성된 장정일의 주장'이 되었습니다.

물론 초창기 일기라는 형식을 빌어서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이기는 했었습니다마는 그 때의 글들이 장정일이라는 주인공의 일기를 통해 인용문으로 소설쓰기 같았다면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은 보다 직설적인 주장의 힘이 두드러집니다.

 

그의 주장을 살펴보면 천부인권은 없으며 "인권은 본래 정치적이다."(앤드류 클래펌)랍니다.

막스 베버와 최장집, 박상훈의 입을 빌려서 시민이 주권자인 민주주의는 없으며, 민주주의는 테마고그(선동)의 힘과 카리스마와 대의(열정)를 갖춘 후보가 선거에서 당선된 다음, 투표자였던 시민을 통치하는 제도라고 말합니다. "대중적 정서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에 기초한 독재"라는거죠. 다만 장정일은 이것만 소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왜 피통치자는 그 악을 고스란히 감당하면서 피통치자 나름의 악마적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걸까?라며 의문을 표시합니다. 정당을 혐오하고 선거에 무관심한 우리들을 부끄러워하면서 말입니다.

더불어 수수께끼 같은 '계급 배반 투표'의 진실은, 오물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의제 바깥 사람들'의 절규라는 시각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입니다. 

 

신이란 한 집단이 영속하기 위해 만들어낸 '도덕적 주형'이며, 때문에 모든 유일신교는 "외부 집단을 악마화"한다. 이게 종교의 초석에 깔린 폭력성이다,라는 주장은 존 티한의 <신의 이름으로>브루스 링컨의 <거룩한 테러>를 빌려서 전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에겐 고작 사마리아인이 외부였으나, "기독교 보편중의는 가장 자유롭고 자비로운 상태에서조차 동일화에 대한 강제 담론을 형성하는 강력한 힘"이며 기독교의 외부는 없다는 보편주의가 바로 기독교의 가공할 폭력이라고 일본 동북부를 강타한 재해에 불관용의 한계마저 훨씬 상회하는 폭언을 퍼부은 두 기독교 목사에게 돌려주고 있습니다.

 

광해군, 연산군, 심지어는 이완용에 대한 새로운 평가들에 대한 의문은 고스란히 제게도 의문으로 남고요.

연애소설은 남자들의 변명이고 이를 읽고 치유 받는 것은 여자다라는 의견에는 조금쯤 동의 합니다.

 

마무리는 '시민은 책을 읽는 사람이고,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단순히 무지한 게 아니라, 아에 나쁜 사람이다.'라는 글이 어울리겠군요.

책 속에 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책의 가장자리와 현실의 가장자리로 난 길, 어디쯤인가를 더듬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