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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8시 45분 극장 앞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합니다.
대부분 장성한 남자들이죠. 간혹 여자와 온 행운아도 눈에 보입니다마는 어쨌든 남자들입니다.
그리고 말 없이 줄서서 팜플렛들을 구매합니다.
통상판도 있지만 대부분 가격이 2배 가까이 비싼 특별판을 삽니다.
어느새 저도 슬며시 줄을 섭니다.
9시.
일본의 극장도 제 시간에 영화가 시작되지는 않습니다.
이어지는 예고편. 예고편. 예고편.
게중에 요과인간 실사판의 예고편이 제일 인상적이 더군요.
극장 예절지켜서 인간이 되고 싶은 베로의 희망을 마음에 담아 핸드폰의 전원을 껐습니다.
그리고
<거신병, 도쿄에 나타나다>가 시작되었습니다.
도쿄도현대미술관에서 지난 7월 공개된 특촬단편영화입니다.
레이의 성우인 하야시바라 메구미의 내레이션으로 전개되는 '거신병'은 제목 그대로 거신병이 도쿄에 나타나서 인류를 멸망시키는 내용입니다. 거신병=에반게리온이라는 이미지입니다.
내용이나 분위기 보다는 거신병이 도쿄에 나타났는데 시민들이 도망가기는 커녕 모두들 스마트폰을 들고 촬영에 임하는 모습이 인상적인 영화였습니다. 전쟁세대와 전후세대의 구분이 아니라 모던을 뛰어넘는 시민들의 폐기가 느껴지는 장면입니다.
암전
에반게리온이 시작됩니다.
3편째 극장 사수!
(벌써 4편도 극장 사수를 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쿵쿵 둥둥거리는 에바의 전투씬 배경음악이 울려 퍼지는 순간. 전 흥분하기 시작합니다.
니어 서드 임펙트이후 위성궤도 상에 봉인된 초호기를 회수하기 위한 아스카와 마리의 작전은 매우 다급하게 전개되고, 어느새 아스카와 마리는 서로 이죽거리면서도 손발이 척척 맞는 콤비가 되어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기대하는 에반게리온 극장판이더군요.
이후의 전개는 뺨 맞은 기분이고요.
신지는 자신이 무슨일을 저질렀는지 기억을 못하고 미사토는 그런 신지를 냉대합니다. 아스카는 분노하고요.
하긴 인류를 괴멸시킨 사나이가 순진한 얼굴로 전 아무것도 몰라요. 저도 출격할게요~~오. 따위의 대사를 뱉는데 친절할 수는 없겠죠.그렇습니다. 서드 임펙트이후 14년. 미사토, 리츠코, 아스카, 마리 등은 네르프에 반기를 들고 빌레(VILLE)라는 신규 조직에서 거대 공중전함 분더를 이용해 사도와 에바를 동시에 상대하고 있고, 인류는 보완되기는 커녕 제대로 괴멸한 듯 보입니다. 팬들의 기대방향보다는 그 반대방향으로 내달리는 안노 히데아키 감독의 근성이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아무튼 자세한 줄거리야 영화를 보시면 알 것이고, 간단하게 감상을 정리하자면...
신지가 카오루랑 연애하는 동안에도 아스카를 비롯한 주변의 여자들은 고군분투합니다.
신지가 실연한 순간에도 아스카는 찾아와 멱살을 잡아 줍니다.
이전에 예고편은 잊어주세요. 완전히 다른 내용입니다.
이토록 갈아 엎은 것은 일 벌려 놓고 수습이 안되고 있거나, 그게 아니라면 오타쿠 낚아서 뺨 때리기입니다.
TV판 마무리할 때도 그렇고, 예전 극장판에서도 그렇고 안노 히데아키 감독은 지속적으로 오타쿠들에게 세상을 돌아봐라 니가 몰입하는 작품따위 별거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발산하고 있었으니, 그 연장 선상에서라면 이번 Q는 세상을 망쳐 놓은 오타쿠들에게 책임을 묻고 있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 해석 역시 과도한 몰입입니다.
거대 공중전함 분더의 브릿지는 멋있습니다.
에바의 조종석 UI도 최신형으로 바뀌었습니다.
카오루와 신지가 피아노 협주를 통해 친해지고, 에바 13호기에 더블 엔트리되는 장면은 TV판 9화 '순간, 마음, 하나가 되어'를 연상 시켜서 좋았습니다. 참고로 제9화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에피소드입니다.
영화가 끝나고 예고편은 어김없이 나옵니다.
제목은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II>입니다.
마지막 기호가 도돌이표라면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4편은 파이널이 아니라 신 에반게리온으로 이어지는 루프가 되려는 것일테지만 그거야 알 수 없는 일이지요.
제가 뭘 기대하든 안노 히데아키 감독은 또 다른 짓을 할 것이고, 낚시 바늘은 던지기도 전에 제 목에 걸려 있습니다.
11시가 넘은 시각.
말 없이 어둠 속으로 흩어지던 청년들의 목에도 마찬가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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