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특별한 관계를 형성하고, 책으로 정체성을 구성하거나, 정보에 대한 과도한 집착. 혹은 책의 효용성에 대한 판단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ㅎㅎ 집에 만권 단위로 책을 쌓아 놓고 있으면 어떤 기분일까요? '뿌듯뿌듯'열매로 배를 채운 기분일거 같기는 한데, 사실 무슨 수집이든 이 정도 숫자가 되면 수납의 문제와 일상 생활의 피해가 속출하게 마련이지요. 그래도 저자 오카자키 다케시는 저장강박 환자 수준은 아닌지 가끔은 스스로 책 다이어트를 하거나, 1인 자택 헌책방 같은 멋진 이벤트를 조직하기도 합니다. 사실 책에 관한 책은 좀 자제해야지 결심한 적이 있습니다. 남이 읽은 책 이야기에 부러움을 느끼거나, 저자의 의견으로 축약된 책 이야기로 대충 책 읽은 기분만 내는 것이 좀 아니다 싶어서요..
을미년 새해 첫 책은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입니다. 짐작하시다시피 양이 들어가는 제목이라 몇해를 미루다 양의 해를 맞이하여 기념으로 읽었습니다. 잘한 기분이드는군요. 흐 영화는 압도적인 전달력에 비례해서 여백이 좁죠. 여백을 넓히면 모호해지고요. 영화 '브레이드 런너'와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는 일란성 쌍둥이입니다. 영화의 원작소설이라기 보다는 필립 K. 딕의 작품과 각본가 햄프턴 팬처와 데이비드 피플스의 작품. 이렇게 두편의 형제작품이라고 생각하는게 편합니다. 타이럴의 사무실에 있던 '올삐미'와 로즌의 우리에 있는 '올빼미'는 서로 다른 의미이며, 종교와 공허는 서로 다른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구원이라곤 없어. (중략) 어디로 가든지 자네는 잘못을 행할 ..
러브크레프트 전집 2의 주제는 우주적 공포입니다. 러브크래프트를 러브크래프트로 만든 주제죠. 결국, 대표작들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진부한 표현과 반복되는 묘사는 살아생전 그의 출간 운이 왜 나빴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하는군요.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그는 헤밍웨이와 동시대 사람입니다. 경쟁자가 차고 넘칠 뿐만이 아니라 수준까지 상향 평준화를 이루던 시대이니 어떤 면에서는 운이 없기는 하군요. 그러나 당대의 평가나 상업적인 성공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가 역사에 이름을 새기는 거겠죠. 생전에 러브크래프트 보다 더 성공하고 평가받던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겠지만 지금 남은 건 헤밍웨이 같은 괴물급이거나 러브크래프트로군요. 과학의 승리가 확정된 후에도 남아있는 마법 시대의 흔적들을 외계의 존재나 다른 차원의 존재들..
1965년에 발표된 필립K. 딕의 닥터 블러드머니의 원제는 'Dr. Bloodmoney, or How We Got Along After the Bomb'입니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의 패러디 제목이지요. 내용은 핵전쟁 이후의 사람들 입니다. 문제는 그 상황이 지금, 여기, 이곳의 상황과 너무 닮았다는거죠. 자기만 빼고 모두에게 공짜 구호품을 뿌리고 있다는 심원한 공포를 점점 키워가고 있는 언론과 부모가 과거에 저지른 일에 대한 비난의 대상이 되어버린 아이들. 불행의 비대칭성이 야기한 불공평함. 그리고 결국 우리는 모두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미래 없는 오늘. 러브크래프트의 이계가 아니라 여기가 핵전쟁 이후보다 더 비현실적인 상황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필립K. 딕의 닥터 브러드머니가 러브크래..
H.P.러브크래프트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영화 '코난-바바리안'에 관한 글에서였습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연의 1982년 영화죠. 여기에 등장하는 괴물과 신화의 배경이 '크툴루'라고 스크린이였었는지 로드쇼였는지에서 읽었더랍니다. 그리고 그 크툴루 신화의 창시자가 러브크래프트라고 하더군요. 그 후 꽤 여기저기서 그 이름을 접했던 것 같습니다. 비교할 수 없는 이세계적인 공포와 우주적인 상상력. 어둠의 신화를 창조한 사람이라는 러브크래프트의 이름은 그의 작품 한 권 읽어보지 않고도 익숙한 이름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름에 들어간 '러브'라는 단어 때문에 히피로 오해하고 있었지만요. ㅠㅠ 사실은 20세기 초엽에 활동한 사람이고, 히피하고는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한정적인 정보를 상상력으로 메우던..
역시 가볍습니다. 벡터 값은 있는데, 질량은 없는 7개의 사랑은 왜 그를 포스트모던한 작가라고 얘기들 했는지 짐작 가게 합니다. 좀 있어 보이는 말을 너무 자주 하고, 사랑의 값어치가 목숨 값과 같은 사랑을 하더라도 굉장하기는 하지만 남의 일처럼 가볍게 스칠 수 있는 이 작가가 그리도 인기 있는 것은 '강호의 대의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겠죠.' 아니 사랑 따위 사랑인 겁니다. 해답이 아니라. 뭐 별건 아니고, 희망 없는 사회라는 데에는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마찬가지란 얘기죠. 젊은이는 무력하고 노인이 폭주 뛰는 사회가 뭐 대단한 걸 소비할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웃음) 당나라 때는 벗과 헤어지며 버들가지를 꺾어 이별의 정표로 주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버들가지에는 '이별'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거북이북스에서 나온 '마나가'는 만화가의 인터뷰로 채워진 부정기 간행물 1호입니다. 의지와 이상이 '시간'의 다리를 건너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데 어떨지요. 걱정이 앞서지만, 행동은 '구매'입니다. 창작자, 만화가 10명의 인터뷰와 사진, 그리고 약간의 그림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예쁜 책이기는 한데 인터뷰의 심도는 의외로 얇아서 아쉽군요. 메모: 속에 담긴 이야기가 많은 작가가 있습니다. 본인을 드러내는 것으로 만화를 꾸려나가는 리얼 버라이어티 형 작가도 있습니다. 스토리는 언제나 구렸지만 그림만은 정말 좋았던 작가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걸리는 것은 '공장형' 만화 창작이 무너진 이후의 만화 종사자의 최저생계에 대한 고민입니다. 예전 공장형 만화가는 자신 밑의 도제 혹은 보조들의 생계를 책임졌습니다..
그날은 뭔가 이야기가 읽고 싶던 날이었습니다. 왜 있잖아요. 불현듯 떠오른 저작활동 중인 두툼한 참치 초밥에 대한 기억 같은 거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날은 꼭 뭘 먹어야 할지 모르지요. 뭘 먹지 않을지는 알고 있지만요. 그렇습니다. 바로 그런 날. 먹거리 장터에 가듯이 서점에 들러 적당한 두께의 책을 고른 것이 도쿄 기담집입니다. '기담'이란 단어에 특별히 끌렸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도쿄 기담집'은 사실 별로 기묘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외롭고, 서러운 인간들의 이야기이지요. '우연 여행자'는 어긋나지만 이어지는 인연에 대한 이야기 사이에 자족적인 게이 피아노 조율사의 홀로됨이 X라 멋져 보이고요. 해변의 아들 유령을 보지 못하는 어머니, 문을 찾는 탐정, 콩밭 ..
제가 이 만화를 본게 1995년쯤입니다. 전국의 오락실에 설치된 전용 게임기계를 통해 통신대전으로 즐기는 커스텀 로봇 대전액션게임을 배경으로 청춘남녀의 사랑을 버무린 대작(?)이지요. ㅎㅎ 순정만화 같은 그림체에 어딘가 불명확한 메카디자인이지만 무척 인상 깊게 읽었던 작품입니다. 그리고 그게 저만 그런게 아니였는지. 이렇게 애장판이라는 이름으로 2권이 발매되었더군요. 좋은건 누구에게나 좋으가 봅니다. 메이커에서 판매하는 기본 베이스의 로봇과 아이템 프로그램, 그리고 커스텀용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나만의 로봇을 만든다는 설정은 지금봐도 신선합니다. 1995년 당시에는 오락실이 이렇게 몰락할 줄 몰랐고, 통신대전이라면 아무래도 가정용이 아니라 전용회선을 깔만한 어떤 장소가 필요하리라 공상하는게 합리적이였겠죠...
모든 평행우주는 양자적이다. 캬하~ 뭔 소리인 줄은 모르겠지만 멋져 보이지 안씁니까? 이거 이 책 읽고 제가 떠올린 말입니다. ㅎㅎ '헤밍웨이 위조사건'이라는 멋진 제목을 단 이 책의 저자는 조 홀드먼입니다. '영원한 전쟁'이라고 SF세계의 전쟁묘사과 일반세계의 반전문학 쪽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가시죠. 이번에 읽은 '헤밍웨이 위조사건'은 조 홀드먼이 1990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헤밍웨이의 잃어버린 초기작품을 위조하려는 영문학 교수 존 베어드와 그 일로 큰돈을 벌어 보려는 사기꾼, 그리고 교수의 아내가 벌이는 병신게임과 헤밍웨이의 위작이 세상에 발표되었을 때 발생하는 '우주적 교란'을 막기위해 개입하는 시공간 초월체의 고군분투가 어우러지는 스릴러풍의 경쾌한 SF입니다. 여기서 우주적 교란이란 인류멸망..
엘레지란 슬픔을 노래한 문학이죠. 페이퍼 엘레지라니 제목부터 짠합니다. 디지털 시대라는데 구시대의 향수와 애잔함 그리고 취향을 느낄 수 있는 제목이죠. 물론 내용은 안짠하지만요. 지은이 이언 샌섬은 영국의 소설가이자 비평가로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진 인물은 아는듯합니다. 저도 사진 지식은 없는 사람입니다. 괜히 허해서 생기는 쇼핑충동에 동네 서점 책꽂이에 꽂힌제목에 혹해서 충동구매한 책입니다. 페이퍼 엘레지는. 일단 내용 소개. 부제가 감탄과 애도로 쓴 종이의 문화사입니다. 이 중 감탄은 확실합니다. 종이란 문명의 주춧돌이자, 알파요 오메가죠. 저자는 우리는 종이인간이라고까지 단언합니다. 그닥 틀린말도 아니죠. 목차를 살펴보면 종이, 나무, 지도, 책, 돈, 광고, 건축, 예술, 장난감, 종이접기, 정치,..
53년에 나온 작품입니다. 원폭이라는 감당키 어려운 물질적인 폭력수단과 공산주의 국가라는 사회적 실험 앞에 서있는 인류란 '기관총을 든 6살 꼬마' 같은 심정이였겠지요. 그점을 상기하지 않는다면 이 무슨 유치한 대체역사소설인가 할지도 모릅니다. 이 소설이 발표될 당시에는 이 소설이 나올만한 사정이 있었던 겁니다. 확실하게. 아무튼 53년. 식자들은 이제 더이상 어린애 같은 짓을 하다가는 공멸한다는 의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몰랐죠. 아서 C. 클라크는 외계인이 나타나서 더 높은 경지로 진화시켜주기를 바랬습니다. 그 내용은 고스란히 소설에 담겨 있고요. 이 주제는 오딧세이 시리즈와 라마 시리즈에서도 계속 반복되는데요. 멋있기는 오딧세이쪽이 멋있습니다. 그러나 성취는 르 귄여사의 ..
나의 한국현대사의 '나의'는 작가 유시민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정치가보다 지식소매상이라는 직업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저작입니다. 띄지에는 '위험한 현대사' 읽기라고 되어 있으나 그다지 위험한 건 아니고요. 1959년부터 2014년까지의 현대사를 유능한 지식소매상 답게 잘 정돈해서 읽기 좋고, 먹기 좋게 매대에 올려 놓고 있습니다. 본인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건들에 대해서는 살짝 비껴감으로써 논란과 변명을 피하는 노련함도 보이고 있고요. 뭐 덕분에 개인적으로는 제목에 붙인 '나의'는 좀 빼지~라는 생각이 없는것은 아니지만 돌베개 입장에서는 책은 팔아야지요. 2-30대에게 적극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소리를 들을 것 같기는 하지만... 나의 한국현대사 - 유시..
어슐러 K. 르귄 여사의 글이 사랑스러운 이유는 '신중한 낙관주의'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장르작가들이 유토피아로 뛰어가거나 디스토피아를 향해 곤두박질 칠 때 르귄 여사는 천천히 걷습니다. 평등, 박애, 자유. 그녀의 우주. 보통 헤인우주라 불리우는 그녀의 우주는 언제나 느리지만 한 명의 영웅이 아니라 여러 개인이 세상을 바꾸고, 음모가 아니라 열정이 세상을 움직입니다. 결코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일은 없죠. 결정적인 순간은 있지만요. 이번에 읽은 '용서로 가는 네 가지 길'에는 4편의 단편이 실려있습니다. '배신', '용서의 날', '사람들의 남자', '한 여자의 해방'은 서로 관계 없는듯 느슨하게 앞뒤로 연결되어 웨럴과 예이오웨이라는 쌍둥이 행성을 구성하고, 요스와 압바캄. 솔리와 테예이오. 합찌바와 라..
존 스칼지가 또 왔습니다. 현역 SF 작가의 작품이 이렇게 재깍재깍 출간되는 것을 보면 인기작가인가 봅니다. 뭐 결국 재미있다는 것이죠. 네 재미있습니다. 언제나처럼 이번에도 존 스칼지는 제법 근본적인 질문을 깔고 의뭉스럽게 액션활극을 펼칩니다. 다만 이전과 다른 점은 지난 소설들에서 철학적 질문이 스님이 주문한 냉면의 면발 밑에 깔린 편육이라면 이번 소설의 질문은 육개장의 고사리 급에 해당하는 중요한 구성요소입니다. 똑똑한 피가 흐르는 우주 땅개들의 영혼 문제는 눙치고 넘어가도 스토리 전개에 아무 문제 없지만 레드 셔츠의 운명은 그들의 셔츠 색깔만큼이나 강렬해서 임멜만 턴을 해도 피하기 어려워 보이는군요. 하긴 인생이라는 무대의 각본가가 나냐, 너냐의 문제를 향해 질문을 던져 놓고 피해가기란 임멜만 턴..
제가 장르문학 팬이라고 칩시다. 장르문학에는 나름의 규칙이 있지요.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규칙 중에 하나는 여기가 아닌 저기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의 것을 빌려오든, 자신이 창작을 하든 적당한 세계가 창조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게 무협의 세계이든 우주연맹이든 새롭게 창조된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대부분 명확하고, 사건의 전후는 명료하죠. (안 그런 것도 있지만) 장르문학이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장르문학의 문학성이 낮아서가 아니라 현실이 아닌 다른 세계가 먼저 눈에 읽히다보니 그런 것일 겁니다. (이 또한 안 그런 것도 있지만) 그런데, 황정은 작가의 야만적인 앨리스씨의 사건은 명료하지 않고, 정체성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우선 주인공 앨리시어의 성정체성부터 모호합니다. 자유분방..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5 -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미카미 엔의 이 돌아 왔습니다. 드디어 반환점을 돌았군요. 우선은 계획대로 끝낼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이번 5권에서 다루는 책을 소개합니다. : 헌책방 전문 잡지입니다. 역시 잡지의 천국 일본이구나 싶습니다. 사건은 집 나간 남편 찾기. 대상은 책등치기 아저씨입니다. 재미있는 캐릭터인데 효용가치가 떨어지니 가차없이 드랍이로군요. : 맞습니다. 그 블랙잭입니다. 의 수 많은 판본과 돌아가신 어머니를 사이에 두고 겪는 가족간의 오해와 갈등입니다. : 역시 가족간의 오해입니다. 그런데 그 '오해를 말 없이 감내하는 호쾌한 남자'라는 캐릭터가 혹시 떡밥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 고백과 화답이 관한 이야기입니다. 평..
마일즈 보르코시건 : 전장의 형제들 -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 지음, 배지훈 옮김/씨앗을뿌리는사람 보르코시건 시리즈 8번째 이야기는 마일즈의 복제인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후 오래간만에 별 생각없이 즐기는 눈덩이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언제나처럼 마일즈가 끼면 사소한 일도 대사건이 되어버립니다. 돈 떨어진 함대와 식민지 출신 장교의 장래 문제. 그리고 그 장교의 아버지이기도한 과격독립단체의 수장. 사내 연애, 마일즈의 복제인간이 얼키고 설켜서 롤러코스트를 탑니다. 일단 재미있는 놀이 기구이고요. 배경만 30세기이지 이야기의 본류는 어느 시대에서라도 있을 수 있는 이야기라는 장점이 있습니다. 복제인간이든 형제든 사유하고 행동하는 이상 독립된 인격체입니다. 참견할 일이 아니죠. 성인이라면 말입니다. ..
마일즈 보르코시건 : 무한의 경계 -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 지음, 이지연 옮김/씨앗을뿌리는사람 30세기. 인류는 우주로 진출했지만 외계인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SF사상 최악의 신체조건을 가지고 태어난 우주영웅이 활약하는 배경입니다. 또각 또각 잘도 부러지는 뼈와 굽은 등, 작은 키, 큰 머리에 조울증과 약간의 분열증까지 있어보이는 우리의 주인공 마일즈 보르코시건의 활약은 오늘도 계속되는군요. 모두 (주)씨앗을뿌리는사람의 뚝심 덕분입니다. 이번엔 와 이 동시에 출간되었는데요. 요 관계가 좀 묘합니다. 에 수록된 '슬픔의 산맥', '미궁', '무한의 경계'는 모두 보다 시간 상 앞선 사건들입니다. 그러니까 보르코시건의 모험을 시간 순서대로 보려면 를 읽고 를 읽는게 맞습니다. 그런데 가 출간 순으..
토성의 고리 -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창비 제목이 라고 해서 SF소설은 아닙니다. 물론 제목만 보자면 고전적인 청소년 SF의 냄새가 나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 소설의 저자는 W.G. 제발트로 사이언스 픽션은 써 본 적 없는 사람입니다. 디스토피아적이라면 만만치 않은 내공이지만 미래세계를 그리는 것은 아니며 과학이 원인인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미래보다는 과거, 과학보다는 마법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의도와 결과는 연관성이 없으며 모든 것은 천천히 쇠퇴해갈 뿐이라는 소설의 이미지는 어떤 디스토피아 SF소설보다 더 절망적입니다. 일단 기둥 줄거리는 주인공이 영국 동부를 도보여행하는 이야기입니다. 대부분 몰락의 현장이고, 쇠퇴한 인간과 영락한 핏줄. 그리고 고립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역사적 인물..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 - 신동호 지음/실천문학사 신동호시인에 대한 첫인상은 20년쯤 된 잡지사 편집장님 같은 느낌이였습니다. (참고로 잡지편집장은 멸종위기업입니다.) 두번째 인상은 웃는모습이 참 '좋다'였습니다.웃는얼굴이야 누군들 안 좋겠습니까마는 신동호시인의 웃는 얼굴은 특별합니다.그냥 좋습니다. 그리고 그가 먼곳이든 모니터든, 무엇이든 어떤 곳이든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을 훔쳐보면 조금은'그리운' 느낌 같은 것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트랜드라는 똥물의 파도 끝을 서핑하는 광고업을 호구지책으로 삼고 있다보면 흘리고 지나오게 마련인 어떤 것을 간직하고 있다는 느낌 말입니다.그게 비록 시인에게는 통증 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2007년 시작한 블로그의 독서메모 408편 중에 시집은 처음입니다...
타임퀘이크 -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아이필드 커트 보네거트의 마지막 소설. 그렇다고 유작은 아닙니다. 이 책 이후에도 여러 글을 썼지만 소설은 이 책이 마지막이라는 얘기죠. 그런데 이 책을 과연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실은 소설을 빙자한 커트 할아범의 칼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그건 제 생각일 뿐. 소설은 소설입니다. 팽창하다 갑작스런 변덕으로 10년 수축했던 우주와 커트 자신. 그리고 그의 분신인 킬고어 트리우트가 주인공 이고요. 10년의 인생을 그대로 반복한 지구인들은 그냥 지구인들인겁니다. OTL 이런 저런 부조리한 소설적인 사건들과 소설보다 더 부조리한 현실이 배경이자. 이야기죠. 1997년에 발표된 소설인데, 현재에도 유효한 칼펜인게 조금은 슬프군요. 그래..
결핍의 경제학 - 센딜 멀레이너선 & 엘다 샤퍼 지음, 이경식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결핍에 관련된 전통적인 관점은 욕망입니다. 욕망은 언제나 관심의 대상이였죠. 사람들의 관심은 보통 욕망을 어떻게 제어하는냐에 있습니다. 그리고 욕망을 어떻게 제어하느냐는 자연스럽게 욕망 내려놓기로 이어지고, 결핍에서 시작된 경제적인 동인은 어느새 비움의 철학이나 명상의 목표가 됩니다. 여기 센딜 멀레이선과 엘다 샤퍼는 관점을 조금 달리하는군요.욕망 아니라 결핍에 촛점을 맞추는겁니다. 욕망을 제어하려 하지 말고, 결핍을 채우라는거죠. 요게 좀 말장난 같지만 의외로 혜안인 것이 욕망을 제어할 수 없는 이유가 끊임없이 욕망이 일어나기 때문이라면 욕망의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죠.문제는 그게 그렇게 쉬우면 진..
작안의 샤나 22 - 타카하시 야시치로우 지음, 정세연 옮김, 이토 노이지 그림/대원씨아이(단행본) 라이트노벨 일명 라노벨은 일본의 서브컬처에서 태어난 소설의 일종으로 애니메이션이나 만화풍의 삽화가 사용된 가벼운 읽을거리입니다. 우리나라에는 90년대 후반에 대원씨아이에서 만든 판타지 노벨을 시작으로 2000년 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먹어도 살은 찌지 않는 뻥튀기 처럼 활자를 소비하지만 정신은 찌지 않는 심심풀이라는 얘기죠. BUT, 그러나세상에 존재하는 것에는 나름의 존재이유와 효용도가 있게 마련입니다. 라이트 노벨이 심심풀이라고 폄하해도 고유의 재미가 없다면 심심함을 풀어주는 어떤 것이, 되지는 못했겠지요. 그렇습니다. 라이트 노벨에는 그 출간량에 비례하는 경쟁이 존..
논객시대 - 노정태 지음/반비 창비의 팟캐스트 라디오 책다방이 나쁜겁니다. 퇴근길. 이어폰에서는 책다방이 흘러나오고,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강남교보 쪽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목적지는 교보가 아니라 신논현역이였지만 이왕 근처이니 가볍게 책이나 구경하고 갈 마음이었지요. 이 얼마나 안이한 생각이였는지. 월급날 D-5일. 책 살 용돈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는데도, 뭔 배짱이였는지. 호기롭게도 귀에는 책 사라고 속삭속삭거리는 팟캐스트를 꽂고 서점을 배회하고 있었습니다. 거의 끝날 무렵까지는 잘 넘기고 있었지요. 정세랑작가는 좋아라 하지만 이번에 낸 소설은 장르소설이 아닌 관계로 급하게 읽을 욕구가 일어나지는 않았더랬습니다. '다음달에 사면 되지 뭐' 정도의 생각을 하면 교보를 대충 돌아 별거 없네 할 때쯤...
보르코시건 6 : 남자의 나라 아토스 -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 지음, 최세진 옮김/씨앗을뿌리는사람 보르코시건 시리즈 6번째 이야기는 입니다. 참고로 마일즈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a 보르코시건 시리즈에서 보르코시건이라는 성을 쓰는 사람이 한번도 등장하지 않다니 이거 참 놀라운 일이로군요. ㅎㅎ 로이스 맥마스터 브졸드는 자신이 창조한 우주의 일면을 채우는데 마일즈가 매번 필요한 것은 아닌가 봅니다. 하긴 게이 행성이야기에 마일즈을 끼워 넣기에는 무리수가 많았겠지요. 나름 마초적인 주인공이라 이야기를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입니다. 문제는 보르코시건 없는 보르코시건 시리즈라는거겠죠. 마일즈의 나이가 아니라 출판년도로 보면 꽤 초기에 쓰여진 작품이라 어쩌면 에서 이어지는 번외편으로써 작가에게는 시리즈의 향방..
신 엔진 - 존 스칼지 지음, 이수현 옮김/폴라북스(현대문학) 존 스칼지의 장점은 상호 이익이 충돌하는 집단 사이의 다툼을 현실감 있게 논리적으로 풀어 놓는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덤으로 스피디하기까지 하지요. 노인의 전쟁 시리즈에서 외계종족들이 그랬고요. 작은 친구들의 행성에서 기업과 보송이, 그리고 보송이의 친구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의 다툼에는 상충되는 이익과 논리적인 해결 방법이 있었지요. 그리고 그 속도에는 가르치려 들지 않고, 설명하려 들지 않고, 주장하지 않는다는 비밀이 있었고요. 게다가 이야기의 스피디한 진행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심각한 주제를 살짝 깔아 놓는 재주가 아주 탁월합니다. 마치 스님이 먹는 냉면가락 밑에 숨겨진 편육처럼 먹어야 할것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의뭉을 떠는 스킬을 탑재하고..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3 - 장정일 지음/마티 '장정일의 독서일기'가 나온 것이 1994년 이니까. 벌써 20년입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던데, 사람도 책도 변하는게 당연하겠죠. 처음 장정일의 독서일기가 세상에 나왔을 때. 그 책은 장정일의 독후감 모음이였습니다. 읽은 책들에 대한 감상과 생각, 그리고 약간의 사족이 붙어있는 독서일기는 장정일의 독서량에 대한 질림과 질시를 느끼게 하는것과 동시에 장정일이 읽은 책에 대한 호기심도 같이 선사했었더랬습니다. 그후 장정일의 독서는 작가의 주요활동이 되었고, 그 활동의 결과는 공부라는 제목을 거쳐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이 되었지요. 책 제목이 바뀌면서 형식도 변화합니다. 일기라는 제목에 어울리게 읽은 날자와 함께 제시되던 장정일의 서지 목록..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4 -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한 작가의 전작을 읽는 것은 노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게다가 전작품의 출판 년도와 이에 따른 판형과 출판사의 변화, 원고에 얽힌 뒷이야기, 개정판마다 달라진 부분, 책 디자인의 차이점 등등까지 챙겨서 조사하는 것은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일이고요. 거기다 작가의 특성에 맞는 이야기를 짜넣는 것은 얼마나 노력이 필요한 일일까요? 그리고 그 작가가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작가라면...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4권. 시오리코 씨와 두 개의 얼굴은 에도가와 란포를 축으로한 이야기입니다. 에도가와 란포는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로 엄청 유명한 작가죠. 알만큼 알려진 작가의 책을 배경으로 작가 생전에 활용한 트릭을 이용하여 ..
보르코시건 5 : 마일즈의 유혹 -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 지음, 김창규 옮김/씨앗을뿌리는사람 마일즈의 모험의 이번 무대는 바라야의 적이자 로이스 우주의 가장 강력한 제국인 세타간다입니다. 8개의 행성으로 이루어진 제국은 호트와 겜 귀족에 의해 지배되고 있습니다. 이게 단순히 성골, 진골이면 좋겠는데. 아니더군요. 우선 겜은 전투와 행정을 담당하는 귀족이고, 이 겜 귀족들에 의해 호트들이 떠받들어집니다. 그리고 호트들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겜을 생산해 내고요. 사실 엄밀하게 생산이라고 하기에는 좀 거시기 합니다만, 호트 여자들이 관리하는 '별 보호소'라는 곳이 모든 게놈정보를 쥐고있고, 이를 통해 사회를 재생산해 내고 있는 것은 맞습니다. 아무튼 이번에도 마일즈의 모험은 여전히 우연처럼 시작되지만 과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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